韓·日경찰 '합작 수사' 사이버 테러범 붙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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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나는 한국의 해커다. 당신은 어디에 사는가. "

"나는 열일곱살이고 6년째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브라질 국적의 유학생이다. "

지난 4월 25일 오후 10시30분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서 영어 채팅을 하던 鄭모(33)경위는 상대방의 신원이 모니터에 뜨자 쾌재를 불렀다.

한달 전쯤 국내외 1천여개 사이트를 해킹, 이라크전 반대 메시지를 올려 국제적으로 파문을 일으킨 해커의 꼬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이 해커는 지난 3월 20일 A식품 홈페이지를 해킹해 브라질 국기 그림을 바탕으로 반전 메시지(without war, blood, for oil Saddam, …)가 뜨도록 화면을 변조하는 등 국내 58곳의 사이트를 침입해 소란을 일으켰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해외 해커 사이트 자료를 수집.분석해 용의자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해커그룹인 '사이버 로드'(Cyber Lords)소속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용의자는 최초 접속지를 숨기려고 브라질.미국.중국 등지의 서버를 경유해 침투했다. 경찰은 자체 개발한 추적프로그램을 활용해 용의자의 첫 인터넷 주소(IP)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본 측에 문의한 결과 문제의 IP를 사용한 용의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1천32개의 사이트를 해킹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보다 확실한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에서 '시리얼 킬러(연쇄살인범)'란 아이디를 사용하는 용의자에게 수십차례에 걸쳐 채팅을 시도했다. 결국 용의자는 해커를 가장한 우리 경찰의 덫에 걸려 자신의 신상은 물론 "사이버 로드의 멤버와 함께 웹사이트를 해킹.변조해 해커 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는 '자백'까지 했다.

이에 경찰은 5월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직원 1명을 일본에 보내 일본 경찰청과 공조 수사를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달 31일 일본 경찰은 도치기현 오타와라(大田原)시에 살던 17세의 브라질 출신 고교생을 용의자로 검거했다.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사이버범죄 수사에서 우리나라가 먼저 소재를 추적해 외국에서 용의자를 붙잡은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사이버 범죄에 대비한 국제 공조체제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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