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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이야기] 중국과 미국, 늑대인가 댄스 파트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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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시진핑 집권 3기,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다. 많은 전문가가 중국 정치를 말하고, 경제를 전망한다. 이 논의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글로벌 트렌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정치경제 역학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중국은 그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 미래 중국이 보인다.

저물어가는 '세계화 시대'

지난 30년을 특징짓는 글로벌 경제 트렌드는 '세계화(Globalism)'다. 1991년 소련 해체가 시작이었다.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미국식 '자유 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대두했다. 세계화의 시작이다.

핵심은 '국경 없는 경제(borderless economy)'다. 투자와 무역은 국경을 구분하지 않았고, 기업은 최적의 환경을 찾아 국경 너머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깔았다. 공장은 개발도상국으로 몰렸고, 선진국은 금융과 기술로 산업을 고도화했다. 산유국들도 세계화에 동참하면서 에너지 가격도 안정세를 유지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GVC(글로벌 밸류 체인)이 탄탄하게 형성됐다.

그 세계화에 균열 조짐이 뚜렷하다. 미-중 무역 전쟁은 기술 패권전쟁으로 확산 중이다.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19,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GVC는 큰 타격을 받았다. 애플은 스마트폰 공장을 중국에서 빼야 할 처지이고, 중국은 희토류를 무기화할 태세다. 반도체 공급망도 위태롭기만 하다.

'30년 세계화(30 Years of Globalism)'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경제 국경'은 다시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선택, 사회주의 시장경제

세계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중국은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1989년 6월에 터진 천안문 사태 여파로 개방의 문을 걸어 잠가야 했다. '서방이 평화를 가장해 중국을 뒤엎으려 한다(和平演變)'는 반(反)서방 정서가 짙었다. 중국은 그렇게 1990년, 1991년을 보내고 있었다.

1992년 들어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해 새벽부터 남쪽 도시에서 덩샤오핑의 음성이 전해졌다. 소위 말하는 남순강화(南巡讲话, 남부를 돌며 한 연설)였다. 그가 전한 메시지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회주의 국가는 계획경제를 해야 하고,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경제를 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사회주의 국가에도 시장경제 요소가 있고, 자본주의 나라에도 계획경제 요소가 있다. 계획경제, 시장경제는 수단일 뿐이다. 사회주의의 나라 중국도 이제는 시장경제를 채택해야 한다.”

중국은 그해 가을 열린 당 대회(14차)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을 선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소련의 몰락으로 야기된 미국 주도의 글로벌 표준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이다. 중국은 개혁의 기치를 다시 올렸고, 서방을 향해 개방의 문을 열어젖혔다.

'늑대와 함께 춤을'

유일한 규칙 제정자였던 미국이 세계화의 우산을 넓게 펴면서 '자유 시장경제'는 맹렬하게 퍼졌다. 1995년 기존의 우루과이라운드(UR)를 대신한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한다. 관세는 낮아졌고, 투자 장벽은 허물어졌다.

중국에 또 다른 선택의 시간이 왔다. WTO에 가입할 것이냐, 마느냐가 그것이다. 여론은 갈라졌다. 보수 성향의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서방에 아직 허약한 중국 경제를 내주는 꼴'이라며 반대했다. 미국이 늑대처럼 달려들어 중국을 뜯어먹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룽지 총리가 총대를 멘다. '늑대와 함께 춤을(與狼共舞)!' 주 총리는 당시 상영되던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를 빗대 중국이 이제 서방 경제와 함께 춤을 춰야 할 시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서방은 공포의 대상에서 '댄스 파트너'로 변했다.

결국 중국은 2001년 말 WTO에 가입했고, 세계화의 흐름을 탔다. 약 5억 명의 노동력이 서방경제시스템에 뛰어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서방 경제 체제와의 접괘(接軌)에 성공했다.

그 결과가 글로벌 넘버투다. 중국은 WTO가입과 함께 '세계공장'으로 부상했고, 제조업 대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을 차례로 제치더니 2010년 결국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덩샤오핑의 선택은 옳았다!'라는 얘기가 중국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2008년의 희극과 비극

2008년 8월 8일, 베이징에서는 거대한 글로벌 축제가 벌어졌다. 2008년 하계 올림픽이었다. '중국이 일어섰다!'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세계에 전한 메시지다. 화려한 군무가 거침없는 중국의 성장을 여실히 보여줬다.

바로 그 시간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월가는 흔들리고 있었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표면화된 금융위기는 세계 전체로 퍼졌고, 서방은 때아닌 혹독한 겨울을 맞아야 했다.

중국에도 전염됐다. 그러나 대응은 달랐다. 국진민퇴(國進民退), 중국은 국가가 나서 경제 부양에 나섰다. 당시 GDP의 약 15%에 해당하는 4조 위안을 풀어 내부부양에 나섰다. 전국 곳곳에 철도를 깔고, 서부 벽지에 공항을 건설했다.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로 서방 경제가 침체 나락에 빠졌음에도 중국 경제는 독야청청 성장세를 유지했다. 2009, 2010년 전 세계 경제 성장의 절반을 중국이 담당했다.

只中國社會主義救西方資本主義.

중국 사회주의만이 위기에 처한 서방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중국 국내에서는 '위대한 중국', '중화 민족의 부상이 멀지 않았다'라는 여론이 일었다. '중국도 이제는 NO라고 말할 수 있다(中国可以說不)'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편승해 몸집을 부풀린 중국이 미국에 대해 노(no)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2년 가을 시진핑 1기가 출범했다.

중국의 선택 시자쥔(習家軍)

세계화에 균열이 본격 시작된 것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이다(2017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었다. 글로벌리즘보다는 자국 이익을 강조했다. 아시아태평양에서 진행되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도 탈퇴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타깃을 중국에 맞췄다.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훔쳐서,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거세게 공격했다. 중국 수입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고, IT기업을 특별 감시했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의 공세는 계속됐다. 오히려 치밀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유일한 경쟁자이자 도전자(국가안보전략. NSS)'로 규정했다. EU 역시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규정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2022년 중국은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시진핑 1인 체제, '시자쥔'의 전면적인 등장이다.

이 역시 세계화의 퇴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국경을 넘나들던 GVC는 지금 삐걱거리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공세는 누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이에 대응할 강력한 리더십을 선택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그들의 답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구체적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다음 칼럼에서 계속하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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