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스크·붕대·지혈·진통제…그대들의 열정이 ‘도하의 기적’ 이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수비수 김민재는 근육 통증을 참고 가나전에 출전해 후반 추가시간까지 뛰었다. 가나전 도중 볼을 걷어낸 뒤 상황을 살피는 김민재. 뉴스1

수비수 김민재는 근육 통증을 참고 가나전에 출전해 후반 추가시간까지 뛰었다. 가나전 도중 볼을 걷어낸 뒤 상황을 살피는 김민재. 뉴스1

“흐름은 4년 전(러시아월드컵)과 비슷한데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개인으로 싸우면 밀리지만, 팀으로서 싸운다면 잘 할 수 있다고 모두가 믿고 있습니다.”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재성(30·마인츠)은 지난달 30일 밤(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알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카잔의 기적 그 이상을 도하에서 재현하겠다”고 다짐했다.

4년 전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2연패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러시아 카잔에서 치른 독일과의 3차전을 2-0 승리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16강에는 실패했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태운 승부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당시 독일전에 대해 ‘카잔의 기적’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카타르월드컵 상황도 녹록지 않다. 조별리그 초반 2경기에서 우루과이(0-0무)와 가나(2-3패)를 상대로 1무1패에 그쳐 H조 3위로 내려앉았다. 오는 3일 0시에 열리는 포르투갈과의 3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한 뒤 우루과이-가나전 결과를 지켜보며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안면 부상 중인 손흥민이 가나전 헤딩 슈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마스크가 틀어진 모습. 연합뉴스

안면 부상 중인 손흥민이 가나전 헤딩 슈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마스크가 틀어진 모습. 연합뉴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위 포르투갈은 한국(28위)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 수 위다. 월드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 공격진의 실질적 리더 브루누 페르난드스(28·맨체스터유나이티드) 등을 앞세운 공격진은 화려하고도 파괴적이다. 본선 2경기에서 5골을 몰아넣었다.

희망적인 부분은 한국이 우루과이와 가나를 잇달아 상대하며 ‘우리의 축구’를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전 월드컵처럼 상대의 플레이스타일을 지나치게 의식한 ‘맞춤형 전술’에 얽매이지 않고 지난 4년 간 벤투 감독을 중심으로 연마한 빌드업 축구를 그라운드에서 구현하며 경쟁 중이다.

대표팀의 경쟁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 그리고 나 자신보다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심에서 나왔다. 에이스 손흥민(30·토트넘)은 안면골절 부상에도 불구하고 매 경기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전을 강행하고 있다. 가나전에서 오버헤드킥과 헤딩을 시도하는 등 부상을 개의치 않는 허슬 플레이를 선보였다.

수비수 김진수(오른쪽)가 공중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충돌해 입가에 피를 흘리자 동료 김영권이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수비수 김진수(오른쪽)가 공중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충돌해 입가에 피를 흘리자 동료 김영권이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4일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서 종아리 근육을 다친 김민재는 진통제를 맞고 나흘 뒤 가나전에 출전했다. 부상 악화 가능성을 우려한 벤투 감독이 권경원(30·감바오사카)을 대체 카드로 준비했지만 김민재의 출전 결의를 꺾을 수 없었다. 경기 내내 거친 몸싸움과 격렬한 태클을 마다 않으며 투혼을 발휘한 뒤 후반 종료 직전에야 교체를 선택했다.

수비수 김진수(30·전북)는 상대 선수와 충돌하며 입술이 찢어져 피를 흘리면서도 조규성(24·전북)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머리를 다친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은 지혈을 위해 붕대를 감았지만, 그마저도 이내 벗어 던지고 경기에 몰두했다.

흥미로운 건 출전 자체만으로 박수 받아 마땅한 선수들이 오히려 “패배는 내 책임”이라며 먼저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다. 가나전을 마친 뒤 공-수의 기둥 손흥민과 김민재가 나란히 “나 때문에 졌다.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고통을 감내하며 그라운드에 오른 이유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팀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증거다.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팀으로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개개인의 신념일 뿐만 아니라 팀을 지배하는 분위기라는 걸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머리를 다쳐 붕대로 고정한 미드필더 황인범이 경기 중 넘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머리를 다쳐 붕대로 고정한 미드필더 황인범이 경기 중 넘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