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승우의 PICK] 포르투갈의 ‘진짜’는 페르난드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포르투갈대표팀의 실질적인 리더로 손꼽히는 브루누 페르난데스. AFP=연합뉴스

포르투갈대표팀의 실질적인 리더로 손꼽히는 브루누 페르난데스. AFP=연합뉴스

가나전은 명승부였다. ‘패배’라는 결과만으로 단정 짓기엔 그 속에 담긴 드라마가 너무 많았다. 0-2로 몰렸다가 두 골을 따라잡는 과정, 한 골을 더 내준 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기까지 사력을 다해 추격하는 상황까지 모든 장면이 심장을 뛰게 하는 스토리로 가득했다. “결과만 빼고 모든 걸 가져온 경기”라 부르면 과장일까.

한국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중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흥분 그 이상의 감정을 경험했다. 내 친구 (조)규성(24·전북)이가 슈팅을 할 때마다 내 목과 다리 근육도 함께 움찔댔다.

포르투갈의 간판스타는 호날두(왼쪽)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페르난데스로 봐야한다. AP=연합뉴스

포르투갈의 간판스타는 호날두(왼쪽)지만 실질적인 리더는 페르난데스로 봐야한다. AP=연합뉴스

이제 치열한 승부의 감흥을 뒤로 하고 다시 냉정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졌고, 포르투갈과의 H조 3차전(3일 0시)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2연승으로 일찌감치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지은 포르투갈이 “(16강에서) 브라질을 피하기 위해 한국전도 반드시 승리하겠다” 했으니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앞선 조별리그 두 경기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보며 확인한 포르투갈은 ‘주인공’과 ‘살림꾼’으로 구분 가능한, 두 명의 리더를 보유한 팀이다. 주연배우이자 간판스타는 단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무적)다. 지난 29일 우루과이와의 H조 2차전(포르투갈 2-0승)에서 전광판에 호날두의 얼굴이 비칠 때마다 루사일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9만 관중의 함성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했다.

개인적으로 ‘메날두 대전(메시와 호날두의 라이벌 구도)’에서 항상 메시를 응원했지만,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자리를 놓고 오랜 세월 경쟁한 호날두의 존재감은 역시나 어마어마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지만 볼을 다루는 센스와 점프력은 여전히 수준급이었다.

우루과이전 득점 직후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페르난데스. 이날 2골을 터뜨렸다. 신화=연합뉴스

우루과이전 득점 직후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페르난데스. 이날 2골을 터뜨렸다. 신화=연합뉴스

포르투갈의 공격 전술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살림꾼은 4-3-3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윙 포워드로 나서는 브루누 페르난드스(28·맨체스터유나이티드)다.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능적인 선수다. 패스와 슈팅이 정확하고 근성도 대단하다. 이번 대회 포르투갈이 기록한 5골 중 2골이 페르난드스의 발끝에서 나왔다.

특유의 ‘나서지 않는 리더십’도 매력적이다. 우루과이전 호날두 골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반 9분 페르난드스가 왼쪽 측면에서 시도한 크로스가 우루과이 골대 안쪽에 빨려 들어가며 행운의 골이 됐는데, 이 과정에서 골대 앞에서 헤딩을 시도한 호날두가 “내 머리에 닿았다”고 주장해 논란이 됐다. 추후 호날두의 머리에 닿지 않은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지만, 페르난드스는 “나는 골이 호날두의 머리를 거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며 동료를 감쌌다. 실력부터 리더십까지 ‘포르투갈의 진짜’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주 포지션이 오른쪽 측면 공격수지만, 경기 중에는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자리를 바꾼다. 우리 대표팀의 측면 수비를 책임지는 (김)진수(30·전북) 형과 (김)문환(27·전북)이 형이 주의해야할 부분이다. 두 선수의 실력을 믿지만, 주위 선수들과 협력하는 게 더 나을 듯싶다.

페르난드스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지만 왼쪽에서도 활발히 움직여 대비가 필요하다. 득점 후 특유의 귀를 덮는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페르난드스. 로이터=연합뉴스

페르난드스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지만 왼쪽에서도 활발히 움직여 대비가 필요하다. 득점 후 특유의 귀를 덮는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페르난드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페르난드스가 인터뷰에서 “한국의 경기를 지켜봤다. 조직력이 훌륭한 팀이지만, 우리는 무조건 이겨 3승, 조 1위로 H조 일정을 마감하겠다”고 말하는 영상을 봤다. 표정과 목소리는 무섭도록 차분한데 눈빛은 불타올랐다. 킬러이면서 보스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전략적으로는 포르투갈에 주축 선수들의 잇단 부상으로 생긴 누수를 잘 파고들어야 할 것 같다. 미드필더 오타비우(28·포르투)와 다닐루 페레이라(32·파리생제르맹), 수비수 누누 멘드스(20·파리생제르맹) 등이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들을 대신할 페프(39·포르투)와 하파엘 게헤이루(29·도르트문트) 등 백업 수비자원들이 기존 멤버들과 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열릴 수 있는 허점을 노려야 한다.

아랍 전통 복장으로 SBS 해설진과 함께 사진 찍은 이승우(왼쪽 두 번째). 사진 이승우

아랍 전통 복장으로 SBS 해설진과 함께 사진 찍은 이승우(왼쪽 두 번째). 사진 이승우

이승우 본지 해설위원·수원FC 공격수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