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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옐친 악수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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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천천히”“빨리” 개혁몸살 일단 회복/“반목은 서로 손해”… 연정배분이 문제
소련 정치에 있어 숙명의 라이벌인 고르바초프와 옐친 두사람이 마침내 손을 잡기로 한 것 같다.
13일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지난 11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에서 연방정부와 러시아공화국의 권력분할,고르바초프­옐친 두 진영의 거국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은 지금까지 온건과 급진으로 분리ㆍ대립돼온 소련의 개혁세력이 비로소 타협점을 찾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급진개혁파인 옐친은 지난 5월말 고르바초프의 반대에도 불구,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당선된 이후 급진노선을 표방,상대적으로 온건입장인 고르바초프를 계속 곤경에 빠뜨려 왔다.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은 주권선언을 발표,러시아공화국의 법률이 연방법에 우선하며 공화국내 모든 자산ㆍ천연자원 등은 공화국 소속임을 천명함으로써 연방정부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샤탈린 안이라고 불리우는 급진경제개혁안인 「5백일 계획」을 지난 1일부터 독자적으로 시작,연방정부가 마련한 비교적 온건한 내용의 「절충안」을 무시해 버렸다.
이같은 상황은 소 연방자체를 사실상 기능 마비시키는 것으로 가뜩이나 각 공화국의 분리ㆍ독립운동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고르바초프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
현재 소련은 15개로 구성된 공화국중 14개 공화국이 독립ㆍ주권선언을 해놓은 상태로,이 가운데 5개 공화국은 내년 1월 발표 예정인 각 공화국에 폭넓은 자치를 허용하는 새 연방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러시아공화국은 붙잡아야하며,그렇지 않고선 자신의 개혁정책은 물론 소련의 장래마저도 더이상 없다는 것을 고르바초프는 잘 인식하고 있다.
한편 옐친의 현재 입장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연방정부와 독자적으로 5백일 계획 실시를 선언해 놓았지만 가격통제ㆍ통화ㆍ금융ㆍ토지 및 부동산 등 연방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각종 제도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선 구체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방 유지문제도 그렇다.
러시아공화국은 현재 소련과 똑같이 민족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러시아공화국 전체인구의 약 18%인 2천5백만의 비러시아계 인구가 각 민족별로 자치 또는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옐친은 13일 『러시아공화국은 연방해체를 결코 원치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함으로써 연방고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이번 고르바초프­옐친의 연정구성 합의는 두사람의 이같은 공통적 입장이 낳은 산물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연정구성에 있어 양측이 어떤 배분을 갖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옐친은 총리ㆍ국방ㆍ재무장관직을 요구했다 하나 고르바초프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소련 관영 타스통신의 정치평론가 안드레이 오를로프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악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옐친은 마침내 러시아공화국의 개혁이 고르바초프의 지원 없이는 실현될 수 없음을 알았다. 고르바초프 또한 소련의 개혁은 러시아 없이는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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