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야마다, 실낱 희망에 마음이 약해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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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8회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7보 (99~115)]
白.山田規三生 8단 | 黑.朴永訓 4단

99로 백 대마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박영훈은 내심 만족한 미소를 흘리고 있다. 아직 실리는 흑이 많다. 이제 대마를 쫓으며 슬슬 하변을 키우면 바둑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101로 붙였을 때 야마다8단이 102로 사납게 젖혀왔다. 절박한 상황에서 결사적으로 발톱을 세운 것이다. 박영훈은 문득 후퇴하고 싶어진다. 유리한 바둑이 난전으로 변하는 게 싫어서다.

하지만 문득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사방이 흑천지인데 여기서 물러선다면 친구들이 웃을 것이다. 그는 103부터 109까지 대마를 우지끈 끊어버렸다.

하나의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두개의 심리가 전쟁을 벌인다. 야마다는 지금까지 상대가 몸조심하는 분위기를 틈타 추격전을 벌여왔다. 그런데 조금만 더 쫓아가면 되겠다 싶을 때 상대가 전면승부로 나왔다.

전투의 핵심은 102쪽 두점이다. 이걸 내준다면 대마는 안전하다. 두점을 살릴 수도 있다. 다만 그때는 대마 사활을 놓고 진짜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지겠지.

피마르는 장고 끝에 야마다는 두점을 버리기로 작정한다. 대마가 산다면 추격의 희망이 있다. 이 가느다란 희망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판단은 틀렸다. 114는 '참고도' 백1로 두점을 살려낸 다음 대마의 생사에 운명을 걸어야 했다. 대마는 A에 두면 선수 한집. 그리고 B의 선수와 C의 돌파도 있다. 그런데도 유리한 박영훈이 끝내 대마를 잡으러 올 수 있을까. 115로 두점 잡으며 박영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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