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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그룹 24시] 한국 도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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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한국도자기는 최근 영국의 세계적인 도자기 업체인 로열달톤으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회사를 인수 할 뜻이 있는지를 물어 온 것이다. 김동수 회장 등 경영진은 브랜드 이름 값이 높은 로열탈톤의 인수에 욕심이 났다. 실제 인수 검토 작업을 했다.

그러나 한국도자기 보다 덩치가 큰 회사를 인수했다가 자칫 경영의 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판단 아래 인수작업을 포기했다. 김 회장은 은행 빚을 얻어 회사를 세우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한 적이 없다. 창업 초기 선친의 일을 도우며 사채를 썼다가 호된 곤욕을 치른 경험 때문이다.

로얄달톤 인수작업을 백지화한 후 한국도자기는 제품의 품격을 한 단계 올리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김회장은 "기존 제품보다 조금 더 나아서는 차별화가 안된다. 개발비를 아끼지 말고 세계 일류 도자기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신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첫 결실은 최근 선보인 '프라우너'브랜드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 5명을 동원해 만들었다. 일반 도자기보다 다섯 배 이상 비싼 고가 제품이다. 커피잔 세트 하나가 30만원을 웃돈다. 내수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프라우너는 지난 9월 이탈리아 밀라노 가정용품 박람회에 출품돼 현장에서 10만달러 어치가 팔렸다. 또 내년 2월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에는 독자적인 전시 부스를 확보할 예정이다. 독자 브랜드를 내세워 처음으로 참여하는 박람회다.

다음달 4일 창립 60주년을 맞는 한국도자기는 도자기 생산량에선 세계 1위 업체로 올라섰다.

연간 3백만개의 도자기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아직 중저가 제품의 비중이 커 웨지우드 등 선진업체 매출의 20%에 불과하다. 세계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 역시 낮다. 내수 시장에선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김회장은 "무차입 경영으로 내실이 다져진 만큼 세계로 나가는 일은 2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올 들어 일상적인 경영은 김성수 사장과 2세 경영진들에게 대폭 위임했다. 회사 경영은 김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성수 사장이 총괄한다. 김회장의 장남인 김영신 부사장은 생산과 제품 기획업무를 맡고 있다.

김회장은 향후 경영 구도와 관련해 "한국도자기 경영은 장자 승계 전통을 이어갈 것"이라며 김부사장의 역할을 점차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김회장의 차남 김영목 전무는 해외사업 분야에 치중하고 있다.

한국도자기는 1943년 김회장의 선친인 김종호 창업주가 충북 청주에 세운 업체다.'충북제도사'란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70년만 해도 군소 업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80년대 초 젖소 정강이 뼈로 만드는 본차이나 소재의 도자기를 국내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선두 업체로 올라섰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침체 여파로 도자기 매출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떨어져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사무직원을 영업팀으로 전보하는 등 전사적인 판매증대 노력을 하는 등 운동화 끈을 다시 졸라매고 있다. 김회장 등 경영진은 법인 카드를 반납했고, 직원들은 사무실 전깃불을 아끼는 등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김회장은 "회사가 어려워져도 감원할 생각이 없다. 이익이 적으면 적은대로 나누면 된다"며 노사공동 운명론을 펼쳤다. 실제로 한국도자기는 창업이래 한 차례의 감원도 없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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