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학' 거두 밀턴 프리드먼 숨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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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병으로 작고했다. 94세.

유대계 동유럽 이민가정 출신으로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 기능을 강조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론적 토대를 쌓았다. 그는 뉴딜 정책 이후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로 군림하던 케인스 경제학과는 다른 길을 갔다. 케인스가 국가의 시장 개입을 정당화한 데 대해 프리드먼은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는 1946년부터 30년간 시카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통화주의(monetarism)를 정립했다. 이는 고전학파와 케인스 경제학에서 간과했던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줬다. 통화가치의 안정을 경제의 최우선 목표로 삼은 통화주의는 닉슨.포드.레이건 등 공화당 행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에서 꽃을 피웠다.

그의 통화주의는 67년 미국 경제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인플레와 실업률의 '마이너스 상관관계(trade-off)'를 보여주는 '필립스 곡선'을 부정했다. 필립스 곡선은 통화량을 늘리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를수록 실업률은 낮아지므로 당국은 적당한 수준에서 인플레와 실업을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통화량 증가가 장기적으로 실업률과 같은 실물변수를 변화시키진 못하며 인플레만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당국은 통화량의 증가를 엄격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이 같은 통화주의 경제이론으로 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론은 많은 추종자를 불러 모아 '시카고 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자의적인 정책의 폐해를 경고했다. 그는 정책이 시장에 가져올 효과는 매우 가변적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장을 놀라게 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론 시장의 적응 현상을 불러와 결국은 의도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서강대 경제학과 곽노선 교수는 "갑작스러운 통화공급 등 시장이 예상치 못한 정책이 나오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사람들의 기대(expectation)를 변화시켜 본래의 균형점으로 돌아온다는 프리드먼의 이론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 즉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뛸 때마다 수요.공급의 시장 원리에 입각한 정책보다는 각종 규제 정책을 쏟아낸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프리드먼은 수많은 칼럼을 통해 마약 합법화와 의사 면허 및 자동차 면허 폐지 등의 혁신적 자유주의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많은 비판도 받았지만 그의 제안들은 '인간의 행동을 금지하고, 규제하고, 허가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비효율적인 관료제만 양산할 뿐'이라는 그의 소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정부 시스템보다는 개인들의 경쟁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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