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걱정 많은 소년 얘기 '겁쟁이 빌리' 낸 인기 작가 앤서니 브라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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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이들뿐 아니라 아이들 책의 구매결정권자인 엄마들까지 좋아하는 그림책을 꼽을 때 앤서니 브라운(60.사진)의 작품을 빼놓기란 불가능하다. 엄마를 '밥순이'로만 알던 아빠와 두 아들이, 엄마의 가출 후 돼지로 변하고 만다는 '돼지책'이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빠에게서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는 소녀의 환상을 그린 '고릴라'등은 국내에서 각각 15만 부 넘게 팔리는 큰 인기를 누렸다. 작품성도 뛰어나 그림책 분야에서 최고 권위로 꼽히는 안데르센상과 영국 최고의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받았다.

1976년 '거울 속으로'로 데뷔한 지 올해로 딱 30년을 맞은 그를 10일 오후 영국 런던의 출판사 워커북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워커북스는 그의 대표작 대부분을 낸 곳. 항상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살았기 때문일까. 도저히 환갑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안이었고,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는 올 초에 나온 그의 최근작 '겁쟁이 빌리'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너무나 걱정이 많은 소년 빌리가 할머니가 선물한 '걱정인형' 덕분에 걱정을 잊어버린다는 내용이다. 걱정인형이라는 소재도 독특하지만, 걱정인형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을 위한 또다른 걱정인형을 만들어주는 꼬마의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지는 작품이다.

"10여 년 전 멕시코에 갔을 때 걱정인형을 선물받고나서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과테말라의 풍습인데, 이제는 중남미 국가 어디서나 있다고 해요.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사람인 저희 어머니한테 걱정인형을 선물했더니, 약효가 일주일밖에 안 가더군요(웃음)."

앤서니 브라운만의 독특한 구성은 여기서도 여전하다. 현실 세계는 수채화로, 공상 부분은 펜화로 나눠 묘사했고, 눈여겨보면 숨은 그림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자나 신발, 비와 구름, 새 이런 것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상황은 분위기를 달리해 현실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어요. 아이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은 상상력이 풍부해요. 그래서 걱정이 많은 거지요."

뒷이야기 하나. 빌리는 빌리가 아니라 '윌리'일 뻔 했단다. 윌리? '꿈꾸는 윌리' '축구선수 윌리' '미술관에 간 윌리'의 침팬지 주인공 말이다. "사실 윌리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윌리의 나이를 아무도 모르니까 얼마나 어린지 설정하기가 애매하더군요. 늘 윌리를 주인공으로 한 책을 완성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는데 잘 안되네요(웃음)."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고릴라'를 비롯해 그의 작품에는 인간보다는 침팬지와 고릴라가 자주 나온다. '인간과 가장 흡사하기 때문에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존재여서'다. 현재 그리고 있는'작은 야수(가제)'도 고릴라와 새끼고양이의 우정을 다뤘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책이 궁금했다. "저는 그림과 글 사이의 빈 공간을 생각으로 메워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책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위해 늘 결말을 열어놓으려고 하지요. 가령 '고릴라'를 읽은 아이들은 '소녀와 환상여행을 떠나는 고릴라는 진짜가 아니라 혹시 아빠가 변장한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라고 대답하지요. 제 책에서 아이들이 얻을 것은 '교훈'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책의 결말은 우리 인생과 같다. 그래도 가급적 해피엔딩이 되도록 신경쓴다"며 웃었다.

앤서니 브라운을 좋아하는 엄마들 중 일부는 '아이들한테 보이기 좀 어렵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우리 엄마')이나 고독('고릴라')등 간단치 않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저는 한 번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괜히 아이들의 이해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어른들은 그림책을 대강대강 보지만 오히려 아이는 어른이 보지 못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짚어내거든요."

런던=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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