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전쟁」 한달 얼마나 달라졌나/「체감치안」 나아진 것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직폭력배ㆍ무질서 등엔 “효과”/실적위주ㆍ인권침해 시비 등 부작용도/검찰 “강력 검거로 범죄 질적 감소” 분석
12일로 「범죄와의 전쟁」선포 한달을 맞았다.
정부가 그동안 총력전을 펴온 결과 조직폭력배가 움츠러들고 교통을 포함한 사회 각종 무질서도 눈에 띄게 개선되는 등 가시적 효과도 없지 않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끔찍한 집단 살인강도ㆍ강간 등 강력사건이 그치질 않아 국민들이 느끼는 민생치안은 거의 달라진게 없다는게 그동안의 평가다.
특히 한꺼번에 가시적 전시효과를 얻기 위한 경찰의 물량작전ㆍ실적주의 등으로 갖가지 부작용이 잇따랐고 의욕만 앞서 무리한 대책 등을 남발했던 일부 부처ㆍ기관에서는 오히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더구나 떼강도ㆍ강간ㆍ조직폭력 등 강력사건에 집중 되어야 할 「전쟁」 대상이 교통질서확립ㆍ유흥업소단속 등에 오히려 더 치중되면서 초점을 잃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이번 「전쟁」 수행과정중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80일 작전」이란 이번 속전속결 방식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시 된다.
국민 대다수가 민생치안 확립이란 현실적 과제에 공감하고 있으나 무리한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고 검찰ㆍ경찰ㆍ일선 시도공무원의 근무강화로 공무의 탈진상태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13일부터 시작된 「범죄와의 전쟁」을 중간 결산해 본다.
◇부작용=실적을 높이기 위한 마구잡이식 연행ㆍ구타,사건발생의 은폐ㆍ축소와 검거사건의 과대포장 등 악습이 상당히 나타났다.
20대 여자 2명을 강도로 몰아 구타 등 가혹행위 끝에 범인으로 만들었다가 풀어준 사례가 발생했고 강도범 검거 발표 때 경찰이 시중에서 구입한 공기총 등을 증거품으로 제시하는 등 실적위주의 무리한 수사가 말썽을 빚었다.
특히 경찰은 부족한 인력을 조기에 증원할 목적으로 신규임용경찰의 교육기간을 3분의1로 단축해 경찰관의 자질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법무부ㆍ내무부 등 관계부처가 후속조치로 마련한 입법내용 중 일부가 행정편의와 중형만능주의에 빠져 인권침해 시비가 일기도 했다.
치안본부가 추진중인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의 경우 임의동행 고지의무조항 삭제와 임의동행 시간연장은 강제동행과 임의동행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고 법무부가 흉악범 가중처벌 때 최고 50년의 징역까지 가능하도록 형량을 높이기로한 방침도 법체계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지적을 받아 스스로 철회했다.
◇발표후 철회된 대책=정부 각부처가 흉악범 수사 및 처벌을 위해 수립했던 각종 입법 및 행정조치 중 국민기본권 침해 소지와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지적에 따라 철회ㆍ번복된 것도 많았다.
인권침해 가능성으로 철회된 입법추진 내용 중 대표적인 경우는 치안본부가 경찰의 수사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마련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중 「경찰관의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조항의 삭제」 부분.
치안본부는 『수사편의만을 생각하고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이 일자 삭제방침을 철회했다.
법무부ㆍ검찰도 후속조치로 마련한 동종ㆍ유사범뵈 3회이상 누범자에 대해 판사가 법정 최고형만을 선고토록하는 내용과 흉악범처벌을 전담하는 강력법원 설치안 등의 입법추진을 백지화 했다.
법정최고형안은 『사법권을 침해하고 판사의 재량권을 박탈하는 위헌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강력법원 설치안은 『현행 법원조직법의 재판관할권 부분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실적과 평가=검찰ㆍ경찰이 조직폭력배 1천6백여 명,강력사범 기소중지자 1천1백여 명의 명단을 파악,소탕령을 내리고 수시로 일제 검문검색을 벌여 일단 범죄에 대한 기선을 제압했다고 볼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이후 단속된 조직폭력 등 주요사범은 모두 6백55명으로 이 가운데 2백98명이 구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입건된 사람을 유형별로 보면 ▲조직폭력 1백87명(구속 96명) ▲약취유인 19명(구속 8명) ▲마약 56명(구속 39명) ▲음란퇴폐 3백72명(구속 1백38명) ▲공권력 도전 21명(구속 17명) 등이다.
이 기간중 흉악범죄는 모두 2백16건이 일어나 1백90건이 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흉악사건 발생내용을 살펴보면 ▲살인 48건(해결 38건) ▲강도ㆍ살인 5건(모두 해결) ▲강도강간 49건(해결 45건) ▲강도상해 1백13건(해결 1백2건) ▲유괴 1건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전쟁선포전과 비교할 때 범죄감소여부는 아직 분석이 끝나지 않았지만 조직폭력 등 범죄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며 특히 『강력한 검거태세 확립 등으로 조직폭력 등의 거물급 내지 간부급이 많이 붙잡혀 질적으로도 범죄감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검찰이나 경찰의 자체 평가분석이며 국민들의 실제 느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같다.<제정갑ㆍ김석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