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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급격히 늙어가는 주택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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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주택시장이 금리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가구 변화라는 주택시장 구조 변동에 있다. 주택시장이 금리 상승이라는 펀치를 맞고 금방 일어날지 아니면 계속 누워 있을지는 가구의 구조적 변화 양태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가구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하는데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가구는 처절하게 늙어가고 있다. 가구 구조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미래의 가구 변화를 보기 전에 과거 우리나라 가구 수 변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자. 우리나라는 지난 40년 동안 인구가 1360만 명 증가하는 동안 가구는 1270만 늘었다. 인구에 맞먹는 실로 대단한 가구 수 증가였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에 더 강화되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인구가 480만 명 증가했는데 가구는 640만 늘었다. 인구 수를 훌쩍 뛰어넘는 가구 증가다. 주택 시장이 달아올랐던 이유를 알 수 있다.

구매력 갖춘 가구 크게 줄고
60대 이상 가구 570만 증가
1인 가구도 고령층이 대세
고령자 1~2인 주택 늘려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앞으로 20년은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인구는 90만 명 줄어드는 데 가구는 310만 증가한다. 인구 변화보다 무려 400만 가구가 더 증가한다는 뜻이다. 인구가 줄어들어도 향후 주택 수요는 여전하다고 전망하는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총가구가 아닌 연령별 가구 변화를 보아야 한다. 40대 가구 증가와 80대 가구 증가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통계청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앞으로 50대 이하 가구는 모두 감소하는 데 반해 60대 이상 가구는 크게 증가한다. 그것도 엄청난 괴리를 보이면서. 60대 이상 가구는 향후 20년간 570만 증가하는 데 반해 50대 이하 가구는 오히려 260만 감소하는 것이다. 70대 이상 가구 증가만 해도 470만에 이를 정도다. 주택시장이 앞으로 지독하게 늙어감을 알 수 있다. 가구 수 합만 보면 착시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멘텀도 이미 꺾였다. 총 가구 수는 2039년에 정점을 보이지만, 주택 수요의 핵심층에 해당하는 35~54세 가구 수는 2015년에 이미 최고점을 기록한 뒤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해당 가구 수는 계속 감소하여 2020년 850만에서 2040년에는 670만으로 180만이 줄어든다. 초저금리로 주택 가격이 급등했지만 주택 시장의 가구 수 모멘텀은 그때 이미 꺾여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 기간을 지난다고 가구 수가 회복되지 않는다. 2040년 이후 10년 동안은 인구와 가구가 모두 같이 감소한다. 인구는 310만명 줄어들고 가구 수도 100만 감소한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전망치는 지금까지 일어난 가구 분화를 미래로 연장한 것이기에 경우에 따라서 가구 수는 이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가구 구조 변화는 주택 수요에 비우호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혹자는 1인 가구 증가를 언급하는데 이제 1인 가구 증가도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청장년층이 아닌 고령층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1인 가구는 258만 증가하는데 60대 이상의 1인 가구가 무려 256만 증가한다. 그리하여 2040년에는 1인 가구 중 60대 이상 비중이 52%로 주류를 차지하게 된다. 고령 부부 중 배우자의 사망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30대 이하 1인 가구는 동 기간 오히려 20만 감소한다.

미래 주택시장을 전망할 때 총가구 변화라는 착시에 빠지면 안 된다. 앞으로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급속하게 노화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볼 때 총인구가 아닌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에 중점을 두듯이 주택시장 역시 총가구 증가가 아닌 고령 가구 증가라는 가구 구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앞으로 구매력을 갖춘 가구는 줄어들며, 1인 가구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이에 따라 1인당 주거 면적이 넓어질 것이다. 재건축할 때 주거 면적을 넓힐 게 아니라 고령자 1~2인이 살기에 적합한 주택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노년층을 보살피는 첨단 시설을 갖추는 것도 방법이다. 주택연금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주택 시장은 인구 못지않은 구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에서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戰勝不復)’는 말이 있다. 과거 주택 시장의 눈으로 미래를 보면 안 되는 때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