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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와 일곱 친구들, 누군가의 눈이 되어 세상을 걷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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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훈련사가 안내견 보행 체험을 시연하고 있다. 국내에 활동 중인 안내견은 70여 마리다. [사진 삼성전자]

20일 용인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훈련사가 안내견 보행 체험을 시연하고 있다. 국내에 활동 중인 안내견은 70여 마리다. [사진 삼성전자]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안내견과 버스를 타려면 매번 간청하거나 한바탕 실랑이를 해야 했어요. 그간 사회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있었던 게 느껴집니다. 안내견은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어루만지고, 한편으론 인식도 바꿔줬어요.”

20일 자신의 세 번째 안내견 ‘여울이’와 새 삶을 시작한 시각장애인 허경호(42·대구 동촌중 교사)씨는 이렇게 말했다. 삼성은 이날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시각장애인에게 파트너 안내견을 전달하는 ‘2022년 안내견 분양식-함께 내일로 걷다’ 행사를 열었다. 여울이를 포함해 정규 훈련을 마친 안내견 8마리가 새 파트너의 품에 안겼다.

이날 생후 8주부터 1년여간 여울이의 사회성 향상 훈련을 맡았던 ‘퍼피워커’(자원봉사자) 김남위(여·49)씨도 자리했다. 김씨는 “10개월간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안내견이 된 여울이가 자랑스럽다. 여울이와 파트너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후보견들은 2년간 기본 훈련과 복종·위험대비 훈련 등을 거치고 자체 평가를 통과한 다음 안내견으로 선발된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70여 마리다. 통상 6~8년간 현장을 지키다가 건강 상태가 나빠지거나 감각이 떨어지면 은퇴한다. 이날 안내견 6마리의 은퇴식도 열렸는데, 이 중 3마리가 자원봉사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국내 유일의 세계안내견협회 인증 기관이다. 삼성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한 직후인 1993년 9월 국내 최초로 안내견 학교를 설립했다. 삼성은 94년 ‘바다’를 시작으로 총 267마리의 안내견을 시각장애인에게 인도했다. 이 회장은 평소 임직원에게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재계에서 소문난 애견가였다. 포메라니안·요크셔테리어·치와와 등을 직접 목욕시키고 빗질해주며 한방에서 같이 잘 정도였다고 한다. 진돗개 수십 마리를 키우며 연구한 끝에 얻어낸 순종을 세계견종협회에 등록시키기도 했다. 2002년엔 세계안내견협회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삼성화재는 안내견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안내견학교 관계자는 “현재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신청하면 2년가량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을 1년 안팎으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는 “안내견과 파트너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사회적 환경과 인식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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