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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밝힌 장열한 「혼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예술 혼은 고통과 고뇌의 깊이 속에서만 크는 것인가.
호암갤러리의 하인두전. 1백여점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 한 가운데서 있으려니까 문득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도 같은 비장하고도 장렬한 화음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바로 이것을 위하여 그는 자기의 한 생을 걸고 때로는 숨차게, 때로는 숨막히는 외로움으로, 어느 때는 음습한 골방 속의 통곡으로 몸부림쳤던 것이 바로 이것을 위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호암갤러리를 처음 들른 것도 아니었고 하인두전을 그렇게 여러 차례 보아 왔건만, 이번 전시회를 하인두 그림의 승리의 공간, 그것으로 보였다.
장엄한 승리의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한 시대가 그에게 요구했던 고통과 몰이해 속에서 우직하게 고집하며 추상화를 끌어안고 겪은 갈등과 외로움, 그리고 마지막에는 목숨을 공격해 온 극렬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매순간 신음하다가 세상을 떠난 그가 이제 비로소 딛고 일어난 자리가 이 자리였다.
하인두, 그는 너절한 거짓이나 쓸데없는 꾸밈 앞에서 사천왕 같은 얼굴로 활화산처럼 가차없이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는가 하면 투박함 속에 지극함이 있었고 무뚝뚝함 속에 남다른 감성의 예민함이 있어 그가 만난 삶 속의 그 무엇 한가지도 예사롭게 흘려버린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추상의 세계를 고집할 때 거의 독선적인 자세로 꿋꿋하게 그 길을 걸고 간 것 같았지만 누구인가 굴절되는 일없이 지켜 보아줄 한줄기의 시선을 목마르게 찾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이 땅에서 보낸 마지막 겨울, 아천리 그의 화실을 찾았을 때 그는 무시무시한 통증에 묶여 캔버스 앞에 있었고 1백호가 넘는 대형 캔버스 위에 먹빛 유채를 칠하고 있었다. 백색캔버스를 먹빛 바탕으로 만들기 위해 그 큰 화폭에다 숨차게 검은색을 채우고 있었다. 간단없이 공격해 오는 말기 암의 통증을 안고 백색의 캔버스를 먹빛으로 채우고 있던 화가.
그리고 그 먹빛 바탕에서 그는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점화하기 시작했다. 1백호, 2백호, 3백호, 그의 불꽃은 신들린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는 먹빛 바탕의 캔버스에 새 생명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면서 왜 진작 이 검은 바탕을 시도하지 못했는가를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평생을 거쳐 고뇌와 갈등과 고통 속에서 승화된 절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바로 그 한때를 위하여 예술가가 끌고 가야 했던 족쇄를 그 지점까지 끌고 갔던 것이고, 이제 호암갤러리의 벽면에서 타오르고 있는 「혼불」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닐까.
순연한 생명의 불꽃은 오래 두고 탈수는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인두, 그가 죽음을 딛고 불붙인 강렬한 「혼불」은 지금 호암갤러리를 밝혀주고 있다.
생전에 그가 가져볼 수 없었던 이 기획전을 그는 어디쯤에서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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