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바둑알 만져 형세 판단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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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사카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바둑 대회서 우승한 송중택씨.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s)는 남의 도움 없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최고의 종목이다. 생각이 보는 것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시각장애인들에게 체스가 많이 보급되었고 실력도 거의 일반인 최정상 수준이다.

11,12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9회 시각장애인 바둑대회가 열렸다. 대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관서기원 모리노(森野節男) 9단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다. 대회장소는 물론 참가자들에게 무료 숙소를 제공한 다니오카(谷岡) 교육재단 이사장이자 오사카 상업대학 학장인 다니오카의 후원도 큰 힘이 되었다. 시각장애인은 이동이 어렵기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려면 많은 경비가 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많은 선수가 참가했으나 올해는 일본에서만 60명 정도 참가했다. 유일한 외국 선수는 이 대회를 4연패했던 한국의 송중택 7단. 시각장애인으로는 단연 세계 챔피언인데 46세의 나이에도 바둑학과에 입학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사고로 시력을 잃기 전에 바둑을 배웠고 시력을 상실한 뒤에도 꾸준히 바둑을 연마한 덕분에 프로기사와 2점으로 대국할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에서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으로서 19줄 바둑을 둘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송중택씨 한 사람뿐이다. 바둑을 두기도 어렵지만 바둑판을 손으로 만져 형세를 판단하고 정확히 계산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바둑은 19줄 바둑과 9줄 바둑, 두 파트로 나뉘어 열렸다. 바둑판은 돌이 고정될 수 있도록 약간 파여 있다. 손으로 만져 흑백을 구분하기 위해 백돌엔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이런 바둑판을 제작하려면 특별한 금형이 필요하다.

19줄 바둑 우승자는 송중택씨. 9줄 바둑에선 일본의 나카마루(中丸仁) 씨가 우승했다. 송중택씨는 대회 5연패를 이뤘다. 승부를 떠나 이곳에 모인 시각장애인들은 "바둑을 배워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시각장애인 바둑은 일본과 함께 영국에서도 활발하다. 모리노 9단과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덕분인데 한국은 아직 꿈도 못꾸고 있는 실정이다.

남치형(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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