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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4억 필요? '100세 안심'이라더니…日 들끓게한 이 영화 [도쿄B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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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도쿄B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노후 생활, 당신은 얼마나 준비되셨습니까? 남편과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는 50대 주부 아쓰코(아마미 유키)는 "부부 두 사람이 65세부터 30년 간 더 살기 위해선 4000만엔(약 3억 8000만 원)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는 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아르바이트만 계속 하며 살아가는 딸, 취업 준비생인 아들을 둔 부부의 통장에는 700만엔(약 6800만 원)밖에 없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 아쓰코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특단의 작전을 구상하죠.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에서 노후자금 확보를 위해 아끼고 또 아끼는 주인공 아쓰코. 배우 아마미 유키가 연기했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에서 노후자금 확보를 위해 아끼고 또 아끼는 주인공 아쓰코. 배우 아마미 유키가 연기했다.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추석 연휴 한국에서도 공개되는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는 장기 불황 속 저출산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아쓰코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아끼고 또 아끼지만 악재는 계속 터집니다. 불경기로 남편은 갑자기 실직을 하고, 딸은 남자를 데려와 호화로운 결혼식을 고집합니다. 거기에 일본이 풍요로웠던 시절 씀씀이 크게 살아온 시어머니와 합가를 해야 하는 역대급 위기가 닥쳐옵니다.

연금, '100년 안심' 이라더니  

지난해 말 일본에서 개봉해 인기를 끈 이 영화는 2019년 여름을 달궜던 '노후자금 2000만엔' 논란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일본 금융청은 남편 65세, 아내 60세 수입 없는 부부를 상정했을 때 이들이 30년을 더 살려면 연금 이외에 2000만엔(약 1억9200만 원)이 더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가입하는 기초연금과 직장인들이 가입하는 후생연금을 포함해 부부가 받는 한 달 연금은 20만9198엔(약 200만 원)인데 실지출액은 26만3717엔(약 253만 원)으로, 한 달에 5만4519엔(약 52만 원)의 적자가 난다고 계산했죠.

최근 일본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소비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쌓여있는 엔화. 연합뉴스

최근 일본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소비자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쌓여있는 엔화. 연합뉴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 보고서에 일본은 들끓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는데 갑자기 고액의 노후자금이 필요하다니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왔죠. 결국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보고서 내용이 국정 방침과 다르다"고 수령을 거부하며 상황을 무마하려 합니다.

흥미로운 건 많은 사람들이 '노후자금 2000만엔' 보고서에 흥분하면서도 실제론 노후를 위해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조사에서 '노후 준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산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40~60대 모두 3000만엔(약 2억8000만 원) 이상이라고 답했죠. 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40대가 780만 엔(약 7500만 원), 50대는 1132만 엔(약 1억870만 원), 60대~70대가 1830만 엔(약 1억7560만 원)이라고 답해 필요 금액보다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연금 개시 나이 75세까지 늦춰 

3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어 후생연금을 낼 수 없는 사람이 증가했고, 1인 가구의 비율도 40% 가까이까지 늘었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 물가가 대책 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생활비는 늘어나죠. '노후자금이 없어!'에 등장한 '4000만엔'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금액일 겁니다.

노후자금 확보를 위한 주부의 분투를 그린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의 한 장면.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노후자금 확보를 위한 주부의 분투를 그린 일본 영화 '노후자금이 없어!'의 한 장면. 사진 얼리버드픽쳐스

출산율 저하, 인구 감소로 연금을 내는 이들이 줄면서 일본 공적 연금은 2002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100년까지 누적 부족액이 480조엔(약 460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고령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근본적인 개혁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일본에선 이미 올해 4월부터 연금 개시 나이 상한을 70세에서 75세로 늘렸죠.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출수록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 연금 생활 개시를 최대한 미루도록 유도한 '편법'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결론은 해피엔딩? 

한편 한국의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지난 4월 기준 57만6905원입니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31.2%로 OECD 평균(47.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죠. 2050년쯤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위기론도 계속됩니다. 연금 고민에서 10~20년 앞서간 일본의 사례를 잘 살펴봐야 할 이유입니다.

그런데 '노후자금이 없어!'의 아쓰코 가족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피합니다만 삶을 바라보는 자세, 라이프스타일을 대폭 전환하는 걸로 탈출구를 찾습니다. 영화는 역시 해피엔딩이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쯤엔 '나의 노후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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