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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학부에 재학생 1만2천명/김일성종합대(북녘의 문화ㆍ예술: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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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학술도별로 정원 배정… 경쟁률 평균 3대 1/사회과학은 5년ㆍ자연과학은 6년제
지난달 22일 북한 대학문화의 중심지라 할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았을 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대학의 교무부 지도원 이희수씨,조선어문학 강좌 권승모 강좌장,역사학부 최영식 부장과 손양구 부부장 등 4명만이 서울에서 온 기자들을 맞아준 사실이다. 대부분의 문화예술 관계기관들이 수많은 직원과 학생 등을 정문에 대기시켜 대대적으로 환영토록 한 가운데 방문객들을 맞았던 것과는 달리 이 대학에서는 최소한의 관계자들만이 본관 청사 앞에서 손님을 맞았다.
○교직원은 4천명
이희수씨는 『해방직후 경제난과 교원부족 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을 세우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간파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발기와 지도에 따라 46년 10월1일 우리 대학이 창립됐다』고 소개했다.
창립당시 7개 학부 24강좌에 1천5백여명의 학생과 60명의 교원으로 시작된 이 대학은 현재 14개학부에 학생이 1만2천명이며 교직원은 4천명,교원연구사는 2천명. 5년제인 6개 사회과학학부(경제ㆍ역사ㆍ철학ㆍ법학ㆍ조선어문학ㆍ외국어문학)와 6년제인 8개 자연과학부(수학역학ㆍ물리학ㆍ화학ㆍ생물학ㆍ지리학ㆍ지질학ㆍ원자력학ㆍ자동화학)에서 매년 2천명 가량의 「주체사상과 현대적 과학지식을 갖춘 민족간부」들이 배출된다. 박사원은 각각 3년 과정의 준박사반(석사과정)과 박사반으로 나뉘어 있으며 해마다 학부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2백명씩 받아들인다. 1백56만평방m의 부지에 본관ㆍ강의실ㆍ도서관 외에 8개 연구소(전자물리ㆍ전자계산ㆍ전자자료ㆍ촉매ㆍ분자생물ㆍ원자에너지ㆍ계산ㆍ분석연구소)와 모든 교재를 자체 집필ㆍ출판하는 출판사 및 인쇄공장 및 총건평 40만평방m의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실습공장과 기숙사는 캠퍼스 울타리 밖에 자리잡고 있다.
『공화국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평균 경쟁률이 3대 1 정도』라는 이씨에 따르면 최근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자동화학부의 경우 경쟁률이 5대 1까지 올라가기도 한다고. 2천명씩 신입생을 뽑을 때마다 도별로 정원을 배정(평양은 30%)하며 각 학교는 시험성적에 따라 본인의 희망을 토대로 지원토록 한다.
○현장경험 후 입학
최종합격자는 대학에서 필답과 구답으로 치르게 돼있는 ▲혁명역사 ▲수학 ▲물리 ▲화학 ▲외국어(영어와 러시아어중 택일) ▲국어 등 6개과목의 시험으로 결정한다. 이씨는 『자연과학분야의 신입생들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통 들어오지만 전체적으로 신입생의 40% 정도는 2∼3년간 현장 경험을 쌓거나 군복무를 마친 뒤 들어온다』고 했다. 또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사회에서 일하거나 군복무를 끝내고 다시 지원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재수생」이란 말에는 매우 생소한 눈치. 일단 입학하더라도 세과목 이상 낙제하면 「추락」(퇴학)해서 현장에 배치된다.
성적은 담당교원이 질의응답으로 평소실력을 측정하고 연간 2회씩 필답과 구답으로 평가하며 ▲최우등(5점) ▲우등(4점) ▲보통(3점) ▲낙제(1∼2점)로 나눈다. 평균 5점을 기록한 최우등생에게는 본인의 희망을 최대로 감안해 직장에 배치하는 특전을 준다.
전교생의 70% 정도가 기숙사생활을 하며 오전 6시에 일어나 간단한 아침운동을 하고 7시30분까지 아침식사를 끝낸다. 1주일에 14강의를 듣는데 첫 강의는 오전 8시에 시작되고 강의를 들으면 오전 11시,3강의를 들으면 오후 1시에 강의를 모두 끝내게 된다. 나머지는 자유시간. 이틈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로청 조직을 통해 탁구ㆍ축구 등의 운동이나 예술활동을 하고 「공부꾼」들은 도서관ㆍ인민대 학습당 등으로 가서 각자 공부한다.
▲공부와 조직생활을 잘 할것 ▲과음하지 말 것 ▲공중도덕 위반 등 도덕생활의 불건전한 현상을 피할 것 등을 열거한 「학생준칙」이 있으나 생활의 사소한 점들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규정은 없다고. 재학중에는 가급적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권하는데 사실상 도서관이나 기숙사에는 재떨이가 없다.
해외유학은 2학년때 소련ㆍ중국 등 대개 8개 사회주의 국가들로 보내며 역시 같은 나라의 유학생들 약 1백명이 이 대학에서 유학중이라고.
○장서 2백만권
2백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이 대학 도서관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곳은 희귀본 열람실. 원로사서 이영순씨(65)는 북한에서 번역이 모두 끝났다는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이미 인쇄된 3백49권을 보여주면서 머지 않아 4백1권까지 모두 완간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조국해방전쟁(6ㆍ25) 때 서울에서 가져온 「리조실록」원본 한질이 국가귀중문서 서고에 있고 우리 대학은 일제때 간행된 영인본만 갖고 있다』면서 「이왕가 도서지장」(일제가 장서각의 책들에 찍은 장서인)이란 도장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창경궁에 있던 장서각 소장도서들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밖에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원본 ▲조선조 필사신문에 해당하는 기별지 ▲『계원필경』 등 희귀자료로 분류된 문헌들을 소개.
한편 이 대학의 역사학부에는 11명의 교수가 있고 사회과학원 연구원들이 강사로 초빙되는데 학부는 ▲혁명역사과(김일성) ▲혁명역사과(김정일) ▲조선역사과 ▲세계역사과 ▲고고 및 민속과 ▲종교학과 등 6개 전공으로 나뉜다. 남북한 역사연구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에 대해 최영식 부장은 삼국통일과 셔먼호사건을 꼽았다. 남한의 역사학계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지만 북한은 그 당시 발해가 있었으므로 통일이 아닌 남북조시대로 본다는 것. 또 셔먼호사건은 김일성의 할아버지 김형직이 대동강을 거슬러 온 셔먼호를 민중과 함께 물리친 사건인데 남측이 김형직 관련 부분을 삭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 학자 안부물어
역사학부 손양구 부부장은 황해도 신원군에서 발견됐다는 고구려 도시 발굴상황에 대해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진행하고 있는데 발굴지역의 대부분이 농경지여서 농사철을 피해야 하는데다 인부들이 평양의 살림집(아파트) 건설에 동원돼 발굴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따.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세기 초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약 1천5백년간 지속된 것으로 보며 그후 계급국가가 선 것으로 본다고 북한학계의 연구결과를 설명하기도. 청동기시대부터 국가가 시작된다는 세계학계의 설을 바탕으로 한 반만년전 단군국가설에 대해 북한학계는 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민간에서는 역사를 가급적 올려잡으려 하고 학계 역시 근거가 있으면 올려잡고자 하지만 아직은 기원전 20세기 이전의 청동기유적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제학계에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원사 교수 박사」로 소개되는 월북 역사학자 김석형씨(75)는 현재 역사연구소 고문. 뒤늦게 나타나 안면이 있는 남한 역사학자들의 안부를 묻기도 했는데 남한학계가 매우 궁금히 여겨온 고고학자 정찬영 교수는 혈압때문에 지난해 65세로 사망했다고 밝혔다.<평양=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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