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돈 반토막, 하루 한끼만 먹을판"…유학생 '원화값 급락' 쇼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 달러당 원화값은 19.1원 떨어진 1350.4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13년 4개월 만에 1350원을 돌파했다.뉴스1

29일 달러당 원화값은 19.1원 떨어진 1350.4원으로 거래를 마치며 13년 4개월 만에 1350원을 돌파했다.뉴스1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공모(28)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최근 원화가치가 급락(환율 급등)하며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서다. 공씨는 그동안 일 년에 두 번 한국에 사는 부모에게 5000만원씩 송금받아 한 학기 학비와 생활비로 사용했다.

지난 1월엔 5000만원을 환전하면 4만1900달러 정도였다. 학비(2만6000달러)와 6개월 치 월세(7800달러)를 제외한 8100달러로 6개월 생활비(월 1350달러)로 썼다. 이마저도 휴대전화‧인터넷 요금, 전기‧가스비, 수도세와 교통비로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나면 생활이 빠듯해 자주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이달에도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낸 5000만원을 받았지만, 실제 공씨의 손엔 3만7200달러만 남았다. 올해 들어서만 원화가치가 13% 넘게 떨어져서다. 학비와 월세를 제하니 수중에는 3400달러가 남았다. 석 달 치 생활비로도 부족하다.

공씨는 “전공 특성상 유독 과제가 많아 아르바이트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라 전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는데 차마 돈을 더 보내달라고는 못 하겠다”며 “다음 학기에도 환율이 이런 수준이면 휴학을 하고 돈을 좀 모아서 졸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19.1원 하락(환율 상승)한 달러당 1350.4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09년 4월 28일(달러당 1356.8원) 이후 13년 4개월 만에 가장 낮다. 꺾이지 않는 ‘슈퍼 달러’(달러 강세)에 원화값이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가며 유학생과 수입업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에서 돈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 유학생의 고충은 만만치 않다. 새 학기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써야 하는 데 원화로 같은 금액을 송금받아도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할 판” “교통비라도 아끼려고 학교까지 2시간씩 걷는다” “이 정도면 휴학 각”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미국에 파견 나가 있는 국내업체 직원 중 월급을 원화로 받는 경우 어려움이 크다. 지갑이 얇아져서다.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는 IT업체 직원은 “선배들이 2~3년 파견 나오면 중형차 한 대값은 모아서 귀국한다고 했는데 지금 같으면 적자를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체도 울상이다. 특히 달러 기준으로 원자재나 부품 등을 수입하는 곳은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이다. 연초부터 이어진 달러 강세에 미뤄왔던 결제와 신규 주문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어서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 반도체 장비업체는 신규 부품 주문 시기와 물량을 두고 3주째 매일 경영진 회의를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맺은 1년 계약이 끝나 새로 주문을 해야 하는데 그사이 원화 가치가 20% 가까이 떨어져서다. 원화 가치 하락은 곧 수익 악화를 뜻한다.

예컨대 지난해 9월 30억원을 주고 샀던 물량을 지금은 35억원을 줘야 한다. 여기에 유류비 인상으로 늘어난 물류비도 골치다. 이 업체 관계자는 “유럽에서 2t짜리 장비를 들여오려면 항공비가 4000만~5000만원은 되는데 일 년 전과 비교하면 두배 이상 뛰었다”며 “그마저도 확보하기가 힘들어 일단 부르는 데로 주고 계약부터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데 있다. 지난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강도 높은 매파(통화 긴축) 발언을 하며 달러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상황으로는 시장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없다”며 “원화 가치가 달러당 1400원까지 밀리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