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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가 주는 교훈/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 중간선거가 있었던 6일 미국 국민들의 투표장면을 보기위해 워싱턴 근교의 한 국민학교 강당을 찾아갔다.
선거라 하면 의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것으로만 길들여진 탓 때문인지 우선 엄청난 부피의 투표용지에 놀랐다.
이 투표장이 소속된 메릴랜드주의 경우만 보더라도 이날 뽑아야될 공직자가 모두 25명에 달했다.
우선 주지사와 하원의원과 주상ㆍ하원의원,군의원을 비롯해 판­검사ㆍ보안관ㆍ회계감독관ㆍ교육장 등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공직자가 모두 선출 대상이었다.
또 투표가 공직선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시책에 대해 주민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 성격의 투표만해도 11가지나 되었다.
이 투표에서는 교육투자비를 늘려야 할 것인가,부동산세를 올려야 할 것인가 여부를 비롯해 심지어 주ㆍ군공무원 채용기준까지 주민의사를 묻고 있었다.
채용기준 투표는 사우디아라비아 파병의 여파인지 주ㆍ군공무원 채용시 예비군으로 동원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채용해도 괜찮겠느냐는 의사를 묻는 것이었다.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서부터 골목을 고치는 것까지 주민들의 동의가 없으면 시행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투표이기 때문에 투표장 주변에 선거열기가 있을 법도 한데 너무나 차분하고 조용한 데 놀랐다.
많은 주에서는 투표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슈퍼마킷 등에서 주류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주점도 투표시간 동안만은 문을 닫도록 하고 있다.
정당 참관인들이 혹시나 하여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는 일도 없었으며 모든 투표의 진행은 자원봉사자들이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거제도의 정착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투표행위가 미국국민의 생활 일부로 굳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소한의 지방자치제 실시를 놓고 아직까지 입씨름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선거때만 되면 타락선거가 고정메뉴로 등장하는 우리 현실과 너무나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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