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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순이삼촌’ 강혜명 “이념을 넘어, 아픔에 공감하는 작품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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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4·3사건을 다룬 오페라 ‘순이삼촌’이 다음달 3,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제주4·3평화재단과 제주시가 공동 기획·제작한 전석 무료 공연이다. 재작년 제주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순이삼촌’은 작년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했고 올해 서울까지 북상했다.

4·3사건 다룬 현기영 ‘순이삼촌’ 원작 오페라 #다음달 3,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료공연 #주연·예술총감독 맡아 유족 아픔에 초점 맞춰

소프라노 강혜명은 ‘순이삼촌’을 상징하는 인물. 주인공 순이삼촌 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현기영 원작소설을 각색하고 연출까지 맡은 예술총감독이다.

“넓고 깊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출은 역할을 디자인하며 공연 전반에 더 개입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주역으로 노래하며 연출하는 게 쉽진 않아요.”

제주 출신 강혜명은 제주여고 시절 소프라노 조수미를 보고 성악가를 꿈꿨다. 추계예술대를 거쳐,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을 졸업했다.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마르세유 국립 오페라센터에서 활동했다. 2015년 도니체티 오페라 안나 볼레나의 타이틀 롤인 앤 불린 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첫 번째 4·3 추념식 전야제에서 노래했어요. 제가 유가족인 것도 모를 때였죠(할머니의 아버지가 희생됐다). 벚꽃 축제 시기여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더군요. 흐드러진 벚꽃을 보면서 이곳에 가슴 아픈 희생, 스러져간 목숨들이 있었다는 문제 제기로 공부를 시작했죠.”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됐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다 여순 사건을 다룬 ‘침묵’ 대본을 받고 직접 각색해 2018년 초연했다. 이는 ‘순이삼촌’ 원작자인 작가 현기영을 설득해 오페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탄탄한 원작에 김수열의 대본, 작곡가 최정훈의 음악이 함께하며 틀을 갖춰갔다.

“최 작곡가는 제주도립교향악단 편곡자로 왔었어요. ‘침묵’ 작업을 함께했고. 오케스트레이션이 무겁고 부르는 사람은 어렵지만 쉽게 들리는 매력이 있죠.”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주연 및 연출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 방언에서는 성별 관계없이 연장자를 '삼춘(삼촌)', 연소자를 '조캐(조카)'라 부른다. 극중 강혜명이 맡은 순이삼촌은 학살이 있었던 옴팡밭에서 두 아이를 잃고 본인은 임신한 몸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가 30년 뒤 옴팡밭에서 자살한다. 현기영 작가는 ‘삼십 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라고 썼다.

작품 중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어진아 내 아들아’ 부분이다. 옴팡밭에 묻혀있는 아이들에게 부르는 이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오페라 마지막의 지전춤에서 하얀 천이 내려오는데 죄없는 혼령이 올라가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회를 거듭하며 작품은 업그레이드됐다.

“징슈필(노래극)이에요. 대사가 많죠. 학살 장면에서 장교도 가수에서 배우로 바꿨어요. 두 아이의 시신을 본 어미의 심정을 보칼리제(가사 없이)로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가 들어갔고요.”

바리톤 장성일이 분한 고모부는 서북 청년단 출신으로 학살에 참여한 가해자다. 극중 그의 입장은 설득력이 있다.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리는 차원이 아닌 작품의 깊이가 드러난다.

“가해자인 그들도 넓게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트라우마를 지닌 희생자였죠. '순이삼촌'은 이념 편향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예술작품입니다.”

강혜명은 27일과 28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김효근 아트팝 오페라 ‘안드로메다’에 출연한다. 10월 19일에는 여순사건 발발일에 맞춰 예울마루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침묵’을 앞두고 있다. 대전・제주・여수・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공연 포스터의 팽나무는 옴팡밭과 당팟에서 자행된 비극을 지켜봤어요. 제주는 묵묵히 저를 지켜봐온 어머니 같죠. 가장 좋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제주에 주고 싶습니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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