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그린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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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우리 나라의 대도시 환경대책으로 유일하게 성공적이었던 그린벨트가 점차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그린벨트는 그 동안 불법적인 훼손이 주로 문제가 돼왔으나 정부가 최근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을 개정, 그린벨트를 합법적으로 훼손하는 길을 더 넓게 터놓았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존해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된 도시개발 제한구역으로 기년 수도권에서 처음 지정된 이래 77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권역 34개시와 36개 군에 지정됐다.
그린벨트 총면적은 전국토의 5·5%인 5천3백97평방km이며 이 안에 살고 있는 주민은 전인구의 2·7%인 1백17만 명, 건축물은 가옥 35만 동을 포함해 모두 51만9천 동이다.
토지이용 현황은 임야가 60·4%인 3천2백58평방km이고 농경지가 26·3%에 1천4백l8평방km, 대지 및 잡종지 등이 7백21평방km로 13·3%를 차지하고 있다.
그린벨트는 지정이래 단 한 건도 해제된 일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의 가장 성공적인 도시환경대책으로 꼽히고 있다.

<14개 권역을 지정>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그린벨트는 해제되지 않은 대신 불법 또는 합법의 훼손행위가 계속돼봤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추세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따라 그린벨트는 적당히 훼손해 이용할 수만 있다면 가장 유력한 부동산 자원으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린벨트의 불법훼손 행위는 80∼89년까지의 10년간에 2만2천7백79건을 기록, 하루에 약6건의 불법행위가 적발된 셈이다.
특히 그린벨트 훼손 행위는 사회전반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최근 수년 사이에 부쩍 늘어나 85∼87년에는 연간 1천∼1천3백건이던 것이 88년에는 3천6백22건, 지난해에는 4천9백19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에는 지난 9월까지 2천6백80건의 불법행위가 적발됐다.
그린벨트 불법 훼손 행위의 유형은 ▲불법 건축물을 짓거나 ▲기존 건물을 증·개축하면서 허용된 것 이상으로 건축면적을 늘리는 행위 ▲논밭을 도로로 만들거나 임야를 정원으로 꾸미는 불법적인 토지 형질 변경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건설부 녹지공원과의 이석수 과장은 『그린벨트는 현재 8백38명에 불과한 감시원이 국토먼적의 5·5%나 되는 광활한 지역을 담당하고 있고 감시원이 정규직 공무원이 아닌 청원경찰이어서 신분보장이 안되고 있다』고 말하고 『71년 그린벨트 지정이래 5천3백명의 공무원이 감시 소홀이나 묵인 등의 이유로 문책과 처벌을 받았다』고 밝히고있다.

<하루 6건씩 훼손>
적발된 불법 건축물은 모두 철거토록 하고 있으나 한번 훼손된 자연은 원상회복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린벨트의 훼손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합법적인 훼손이다.
건설부의 그린벨트 내 행위 허가 현황에 따르면 71년이래 지난 5월까지 20년 동안 모두8만9천7백58건 72·5평방km가 가건물 설치와 토지 형질변경 등에 의해 사실상 합법적으로 훼손됐다.
총 잠식 면적 중 정부의 공공사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대규모 사업에 해당하는 토지 형질변경은 전체의 84·5%인 61·3평방km를 차지했다.
이것은 정부가 앞장서 그린벨트를 훼손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86년 이후 5년 동안 토지 형질이 변경된 면적은 28·5평방km로 지난 20년 동안 훼손된 면적의 46·5%나 돼 그린벨트 잠식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추세다.
정부가 북한산 국립공원 지역 내 그린벨트 1만6천평의 울창한 산림을 훼손하고 오는 12월에 신축하는 통일연수원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일관된 기준필요>
또 정부는 지난 86년 경기도 시화 지구 개발사업을 시작하면서 4백50여만평의 그린벨트를 단지조성과 토사 채취장 설치를 외해 훼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대단위 그린벨트를 사실상 해제하는 것은 모법인 도시계획법에 위배되는 편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권태준 교수는 『71년에 그린벨트를 처음 지정할 때는 환경보호장치로서의 의미는 적었고 대도시의 지나친 팽창을 막는다는게 주된 취지였다』며 『그러나 서울등 대도시에서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산성비가 내리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린벨트는 다른 어떤 이유보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지금처럼 정치적·경제적 압력에 따라 무원칙하게 규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그린벨트 관리에 있어 부조리를 야기할 뿐』이라고 지적하고 『한없이 예외를 만들어 나갈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률적 기준에 의해 그린벨트를 관리해야 의혹도 없고 선진국처럼 국민 일반이 그린벨트의 감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건설부는 지난달 30일 도시계획법 시행규칙을 개정, 개발제한 구역 내에서 16개 항목의 행위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을 시행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개정된 시행 규칙은 그린벨트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행위규제를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것 외에도 공공시설물 설치를 대폭 허용하고 건설장관의 심의 허가권을 대폭 하부기관에 이양해 허가 절차를 간편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양병이 교수는 『그린벨트 이용 확대를 주장해 온 기관들은 그린벨트를 환경차원에서 보지 않고 부동산으로 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제될 것으로 보고 정책입안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규제를 완화할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과를 보면 언제나 편법에 의한 그린벨트 훼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이경재 교수(조경학)는 그린벨트에 의해 보존되고 있는 대도시 주변의 녹지는 대기오염물질을 정학하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대도시에서 발생하는 아질산가스·이산화황·탄산가스 등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려면 전체면적의 3배에 달하는 녹지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수도권 전체의 녹지대는 40%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린벨트라고 해도 녹지대는 임야에 해당하는 60%뿐이며 그나마 서울 근교는 소나무 잎이 변색되고 전나무는 계속 말라죽어 베어내는 형편』이라 들고 『지금부터 시급히 나무를 심고 녹지를 늘려나가야 할 시점에 그린벨트 자체를 정부에서 앞장서 훼손하는 것은 무모한 행정편의주의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부서 매입토록>
특히 공해추방운동연합·환경과 공해연구회 등 10개 환경단체는 정부의 이번 대규모 완화조치를 「무모한 도박」이라고 규탄하고 그린벨트 규제완화조치 철회를 위한 범 사회단체 협의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밝혀 민간차원의 저항운동이 일어날 조짐마저 보이고있다.
공해추방 운동연합의 최열 의장은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행정 편의주의일 뿐 아니라 의혹의 소지가 크다』고 말하고 『서울 상공 3백m까지 시커먼 매연이 덮여있는 것을 매일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녹지를 훼손해 개발하겠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행정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대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민간부문 뿐 아니라 서울시 등 지방자치 단체와 정부 각부처에서도 그린벨트 이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린벨트 내에 살고 있는 주민이 l백17만 명에 이르고 있어 이들도 생활불편을 호소하며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그린벨트는 17%만 국·공유지이며 나머지는 모두 사유지이기 때문에 재산권 침해에 대한 불만과 민원이 크다.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입후보자들이 그린벨트 해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고 정부기관에서도 틈만 나면 그린벨트를 적절히 이용해야 한다며 사실상 해제를 내세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권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 나라는 국토의 l4%를 그린벨트로, 그중 60%를 국·공유지로 유지하고 있는 영국의 예를 따라야지 제도 시행 10년 만인 65년에 지방자치 단체와 주민반발로 그린벨트를 포기해버린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녹지가 아닌 그린벨트는 정부에서 매입해 토지소유 국민들의 재산권 침해를 줄이고 정부의 장래 토지자원으로 활용해야하며 녹지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고 보존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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