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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전 사이, 몸살 앓는 관광 명소] 케이블카 막히자 육모정~정령치 전기 산악열차 추진…다시 숨가쁜 지리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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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08면

[SPECIAL REPORT] 지리산 산악열차

지리산·설악산·흑산도·제주도. 누군가는 이번 여름휴가로 다녀온 곳이고 조만간 다녀갈 곳, 인기 여행지다. 국립공원을 갖고 있거나(제주도),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지정 요건 중 하나인 ‘훼손이나 오염이 적으며 경관이 수려할 것’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한 꺼풀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개발을 놓고 시끌벅적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 다른 지정 요건인 ‘보전 가치가 있을 것’ ‘각종 산업개발로 경관이 파괴될 우려가 없을 것’이 무색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 살리자’ ‘인구 늘리자’ 등 ‘잘살아 보자’는 현실적 삶의 노선이 스며있기도 하다. 자연의 수려함 뒤에 웅크리고 있는 논란. 자칫 소모적 논쟁으로 우리 사회 한 귀퉁이의 동력을 멈칫하게 할 수도 있다. 개발과 보전의 목소리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꼬인 그 네 곳을 살펴본다.

백두대간 고리봉에서 바라본 정령치와 남원시 일대. 김홍준 기자

백두대간 고리봉에서 바라본 정령치와 남원시 일대. 김홍준 기자

“친환경으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지역이 살아나려는 방안입니다.” “교묘하게 시범노선을 국립공원 밖에 뒀다가 안으로 들어오려는 의도입니다.”

①정령치.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회차 지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홍준 기자

①정령치.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회차 지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민족의 영산. 국립공원 1호. 어머니의 산. 생명의 산. 이렇게 여러 다른 이름을 가진 지리산(1915m)이 십수 년째 개발과 보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는 지리산에 친환경 산악열차를 추진하고 있다. 환경단체에서는 친환경으로 포장한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휴게소 총 13.22㎞  중 시범노선 1㎞가 당장 논란에 휩싸였다. 시범노선 구간인 고기삼거리~고기댐은 지리산 권역이지만, 지리산국립공원이 아닌 곳이다.

②고기댐.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1km 구간에 포함된다. 멀리 정령치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②고기댐.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1km 구간에 포함된다. 멀리 정령치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남원시는 “시범구간 운영 중 드러나는 여러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국시모) 대표는 “일단 국립공원이 아닌 곳에서 시범구간을 운영한 뒤 야금야금, 여론을 무마하면서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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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국립공원 밖 시범노선 완공 계획

③고기삼거리.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1km 구간에 포함된다. 김홍준 기자

③고기삼거리.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1km 구간에 포함된다. 김홍준 기자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은 지난 6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철기연)에서 시행한 공모에서 남원시가 우선 협상 대상 지자체로 최종 선정되면서 수면 위에 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남원시는 2013년 철기연과 ‘지리산 산악철도 기술교류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2012년 양양·남원·함양·산청·구례·영암 등 6개 지자체가 추진한 내륙형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이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국공위)에서 부결된 직후다. 지난 6월 환경부는 구례군이 453억원을 들여 산동면 지리산온천랜드~지리산 우번대(해발 1300m) 하반부를 잇는 3.1㎞ 구간을 케이블카로 잇는 사업 계획을 반려한 바 있다. 윤 대표는 “케이블카에서 산악열차로 갈아탔을 뿐, 조용하고 집요하게 지자체들이 국립공원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④육모정.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연장노선의 출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홍준 기자

④육모정.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연장노선의 출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남원시는 2015년에 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달궁삼거리~성삼재~천은사 34㎞ 구간에 3330억원을 들여 산악철도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듬해 이를 위해 ‘산악철도에 국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궤도운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국토부가 ‘경제성 등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백지화시켰다. 자연공원법상 공원자연보존지구 내 궤도 설치는 2㎞를 넘을 수 없는데, 4.3㎞나 자연보존지구에 들어간 것도 남원시로서는 걸림돌이었다. 불씨가 되살아난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환경 훼손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 ‘전기열차’로 다시 갈아탔다. 이번 ‘13㎞ 친환경 산악열차’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새 철기연의 단독사업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2024년까지 건설 예정인 시범노선 1㎞ 구간은 278억원, 시범노선 운영 검토가 끝나는 2026년 이후 추가할 연장노선 약 12㎞까지 합쳐 총 981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기존 도로(지방도 737호, 국가지원지방도 60호)를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남원시 “산악열차 1610억 생산 유발 효과”

산악열차 회차 지점으로 검토 중인 정령치를 향해 오토바이가 질주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산악열차 회차 지점으로 검토 중인 정령치를 향해 오토바이가 질주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남원시는 “내연기관 차량으로 인한 소음·대기오염 등 환경문제를 해소하고 매년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간 폭설·결빙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주민들에게 교통기본권을 제공하기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혀왔다. 시는 아울러 “상용화되면 1610억원의 생산 유발효과와 1128명의 고용 유발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판 융프라우 산악열차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령치에서 만난 오모(62·전북 전주)씨는 “열차가 생기면 눈 덮인 겨울에도 올 수 있어 좋지 않겠나”고 밝혔다. 전북 김제에서 온 강모(62)씨는 “한국판 융프라우 열차를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하태민(26) 정령치 휴게소 운영자는 “사람이 너무 많이 와도 소음과 쓰레기·민원이 늘어나는 등 관광지의 매력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낫다”고 주장했다. 성삼재에서 자전거로 넘어온 김윤성(33·전주)씨는 “라이더의 입장에서 산악열차는 환영하지 않는다. 기존 도로를 활용한다는데, 자전거는 어떻게 다니라는 말이냐”고 걱정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김씨의 지적대로, 도로는 어떻게 될까. 왕복 2차로인 기존 도로에 산악열차 궤도가 들어서면 그 옆에 차량은 다닐 수 없다. 현재로서는 도로교통법·궤도운송법 등에 걸린다. 또한 산을 깎아 도로를 대폭 넓히지 않는 한 차량 통행은 불가능하다. 남원시는 산악열차 공모 제안서에 전북도와 협의해 도로를 지방도에서 시도로 낮춘 뒤 폐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민들도 찬반으로 갈리지만, 도로는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기삼거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천명후(68)씨는 “산악열차를 만들어도 관광객이 1년, 잘하면 2년만 몰렸다가 안 오지 싶다. 예산 낭비다”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이장을 지낸 양해거(75)씨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도로가 폐쇄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는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산악열차 계획이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주민,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설문 결과, 산악열차 설치 찬성이 반대를 조금 앞선다”며 “8월 말과 9월 중순 사이에 주민 공청회 또는 설명회를 여는 등 앞으로도 소통을 충분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차 운행하려면 추가 개발 필요할 수도

남원시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산악열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기존 도로를 가로지르는 동물들은 궤도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 소음을 없애기 위해 추진한다는 전기열차는 90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그것도 가끔 통행하는 자동차와 달리 온종일 내기 때문에 야생동물에 더 위협적”이라며 맞서고 있다. 현재 정령치로에는 ‘야생동물 주의’ 팻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야생동물이 도로를 넘나든다는 의미다. 이곳 지리산 서북면은 반달가슴곰의 주요 이동 경로다. 반달가슴곰이 백두대간을 통해 덕유산·속리산 등으로 이동하다가도 겨울잠을 위해 돌아오는 요지다. 정인철 국시모 사무국장은 “산악열차가 생기면 국가복원사업 대상인 반달가슴곰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협약이 2022년 8월 중 예고됐다. 연장노선으로 검토 중인 정령치로 주변에 야생동물주의 팻말이 설치돼 있다. 김홍준 기자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협약이 2022년 8월 중 예고됐다. 연장노선으로 검토 중인 정령치로 주변에 야생동물주의 팻말이 설치돼 있다. 김홍준 기자

산악열차가 기존 법에 줄줄이 걸린다는 점도 문제다. 13.22㎞ 중 9.5㎞는 국립공원에 포함된다. 사업을 추진할 경우 국립공원변경사업이자 국공위 심의 대상이 된다. 이에 대해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보다 구체적인 남원시의 사업 계획이 나와야 검토가 가능하다”며 “사업 추진 방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도로의 굴곡이 워낙 심해 열차를 운행하려면 회전각을 완만하게 해야 하므로 산림 훼손이 계획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을 비롯한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와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리산 산악열차가 국립공원·백두대간 등의 보호지역까지 개발의 대상으로 삼는 산악관광정책의 시작점이라 판단하고 있다. 남원지역 4대 종단 종교인들도 지난 6월 21일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은 “환경 훼손을 가속해 생태계 교란이 걱정된다”고 밝혔다.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가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구간이 고기삼거리에서 옛 도로를 거쳐 고기댐까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지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남원시는 최근 이곳을 지나지 않고 고기삼거리에서 바로 정령치로로 시범노선을 만들기로 계획을 바꿨다. 김홍준 기자

윤주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가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 산악열차 시범노선 구간이 고기삼거리에서 옛 도로를 거쳐 고기댐까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지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남원시는 최근 이곳을 지나지 않고 고기삼거리에서 바로 정령치로로 시범노선을 만들기로 계획을 바꿨다. 김홍준 기자

윤여창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립공원 제정 취지가 미래 세대를 위한 자연을 물려주는 것인데, 현재 세대를 위한 개발 논리로 변질했다”며 “산악열차를 만드는 업자나 출발지·종착지의 숙박·휴양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에 이윤이 집중될 수 있어 지역 주민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신익상 성공회대 교수는 “인간과 가축이란 문명동물은 98%이고 야생동물은 2%에 그친다”며 “야생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개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생명의 산, 지리산은 거친 숨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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