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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전 사이, 몸살 앓는 관광 명소] 14년째 표류 흑산공항, 국립공원에 짓고 명사십리 내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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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08면

[SPECIAL REPORT] 흑산도 흑산공항

지리산·설악산·흑산도·제주도. 누군가는 이번 여름휴가로 다녀온 곳이고 조만간 다녀갈 곳, 인기 여행지다. 국립공원을 갖고 있거나(제주도), 그 자체가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지정 요건 중 하나인 ‘훼손이나 오염이 적으며 경관이 수려할 것’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한 꺼풀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개발을 놓고 시끌벅적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또 다른 지정 요건인 ‘보전 가치가 있을 것’ ‘각종 산업개발로 경관이 파괴될 우려가 없을 것’이 무색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 살리자’ ‘인구 늘리자’ 등 ‘잘살아 보자’는 현실적 삶의 노선이 스며있기도 하다. 자연의 수려함 뒤에 웅크리고 있는 논란. 자칫 소모적 논쟁으로 우리 사회 한 귀퉁이의 동력을 멈칫하게 할 수도 있다. 개발과 보전의 목소리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꼬인 그 네 곳을 살펴본다.

흑산도의 높이 50m 촛대바위. 흑산공항 건설 사업은 14년 째 표류 중이다. 권혁재 기자

흑산도의 높이 50m 촛대바위. 흑산공항 건설 사업은 14년 째 표류 중이다. 권혁재 기자

“먹는 물이 내려오고 바다가 잔잔하니 마을이 들어섰구나.”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설경구 역)이 전남 신안군 흑산도로 유배되면서 한 말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이 흑산도에 공항이 들어선다. 흑산공항 건설 사업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흑산도 소형 공항 건설’을 검토하면서 본격화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총 1833억원을 들여 54만7646㎡ 부지에 길이 1.2㎞, 폭 30m의 활주로를 포함한 공항시설을 만든다. 흑산공항이 개항하면 서울에서 흑산도까지 배편 등으로 7시간 이상 소요되는 시간이 1시간대로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업은 14년째 표류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철새 보호 대책 강구, 조류 항공기 충돌 가능성, 항공기 사고 가능성, 국립공원 가치 훼손’ 등의 이유로 심의를 보류하거나 잠정 중단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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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흑산공항 사업은 2011년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편익분석(B/C)값 4.38의 높은 경제성을 받았지만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신안군은 국립공원 부지에 흑산공항을 짓는 대신 그 4.3배에 달하는 선도갯벌을 국립공원 부지로 편입하겠다는 안을 내놨지만, 해수부가 반대하면서 틀어졌다. 신안군은 다시 명사십리 해수욕장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내놓겠다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잦은 해무도 문제다. 2018년 환경부는 해무로 흑산도의 항공기 결항률(20%)이 선박 결항률(14%)보다 높다고 국무총리실에 보고하기도 했다. 공항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흑산공항 건설은 경제성·안전성·환경성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태”라고 밝혔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흑산도를 찾아 공항 건설을 약속하며 호남 민심을 달랬지만 현재 공항 건설은 안개 속이다. 흑산도의 한 주민은 “함께 개발이 발표된 울릉공항은 순항 중인데, 우리는 표류하고 있다”며 “희망 고문만 이어지는 셈”이라며 낙담했다. 환경단체들은 “신안군은 우회 편법을 쓰고 있다”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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