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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전 사이, 몸살 앓는 관광 명소] 출렁다리·스카이워크 260개…'나홀로'는 어렵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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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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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네요. 입장료 주고 5분간 뭘 봤는지…(D스카이워크, 경기도 고양 김모씨).”

“잘해놨네요. 근처 다른 곳에 가려다 들렀는데…(S출렁다리, 충남 아산 박모씨).”

여름 휴가철인 지난 8월 둘째 주, 출렁다리·스카이워크를 찾은 이들의 반응은 이렇게 갈렸다.

출렁다리 전성시대다. 출렁다리는 케이블카·모노레일과 함께 지자체가 선호하는 관광 시설이다. 최근 수년간 지자체들이 다투듯 내걸었다. 그 뒤를 스카이워크가 따라오고 있다. 추격 속도가 아찔하다. 둘이 합쳐 260개가 넘는다. 언뜻 메뉴가 푸짐해 보인다. 하지만 개장 초기의 열기가 금세 식어버리거나 잘해야 뭉근하게 유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계 관광,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출렁다리와 스카이워크는 모래로 지은 성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십억, 수백억원 혈세로 만든 다리와 길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매년 매출이 뚝뚝 떨어진다. 개장 초기의 3분의 1 정도다. 방문객도 그만큼 덜 오는 것 같고. 출렁다리가 여기저기 생기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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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당호 출렁다리. 402m로 ‘아시아 최장’을 내세웠지만 2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 [사진 예산군]

충남 예당호 출렁다리. 402m로 ‘아시아 최장’을 내세웠지만 2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 [사진 예산군]

탐방객들이 충남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길이 207m인 이 출렁다리는 지난 2009년 7월 개통 당시 가장 길었지만 2018년 4월에 마장호 출렁다리(220m)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김홍준 기자

탐방객들이 충남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길이 207m인 이 출렁다리는 지난 2009년 7월 개통 당시 가장 길었지만 2018년 4월에 마장호 출렁다리(220m)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김홍준 기자

천장호(충남 청양) 출렁다리 근처 한 음식점 사장의 말이다. 사장님 말에는 우리나라 출렁다리의 현주소가 박혀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는 길이 207m로, 2009년 ‘국내 최장 출렁다리’를 내세우며 개통했다. 2014년 탐방객 수가 104만명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방문자가 급감하며 지난해 32만명에 그쳤다. 이웃한 예당호(충남 예산) 출렁다리는 ‘아시아 최장’을 내세워 2019년 402m로 만들어졌다. 국내 처음으로 사업비 100억원을 돌파한 출렁다리다. 첫해 295만명이 찾았지만, 올해 8월 11일까지 62만명이 찾았다. 연말까지 방문객은 지난해에 이어 100만명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예당호의 최장 기록은 2년 만에 깨졌다. 2021년에 또 다른 이웃인 충남 논산 탑정호에 598m짜리가 들어서면서다.

충남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는 598m 길이로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최장 기록을 갖고 있다. [논산시청 제공]

충남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는 598m 길이로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최장 기록을 갖고 있다. [논산시청 제공]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행정안전부가 확인한 전국 출렁다리 숫자는 208개. 이 중 94개가 2015년 이후 만들어졌다. 지난해만 20개가 개통했다. 이처럼 출렁다리 숫자가 단기간에 급증한 것 외에도 눈여겨볼 만한 흐름이 있다. 100m가 넘는 대형 출렁다리가 갑작스럽게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21년 11월 보고서를 보면, 1999년 이전에는 100m가 넘는 출렁다리는 아예 없었다. 그런데 2014년 114개 중 15개(13%), 2020년 188개 중 45개(24%), 2021년 208개 중 63개(30%)가 100m가 넘는다. 7년 새 전체 출렁다리 수가 1.8배 늘어날 동안 100m 이상은 4.2배 증가했다. 출렁다리가 길이 경쟁에 나선 것이다.

출렁다리가 길이 경쟁을 하면서 ‘종목’도 세분화해 “우리가 최장, 최대”를 알리는 추세다. 출렁다리는 내수면(호수·저수지·댐)형과 산악형·해안형으로 나뉜다. 천장호(207m, 2009년 7월)·마장호(220m, 2018년 4월)·부항댐(256m, 2018년 11월)·예당호(402m)·탑정호(598m)가 차례로 내수면형 1위에 올랐다. 산악형에서는 전북 진안 구봉산 출렁다리가 2015년 7월에 100m 시대를 열었다. 이후 감악산(150m, 2016년 9월)·소금산(200m, 2018년 1월)으로 챔피언이 바뀌었다. 2021년 3월 채계산(270m) 출렁다리가 개통하더니 올해 1월 다시 소금산에 404m짜리 울렁다리가 놓였다.

강원도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 출렁다리와 울렁다리. 울렁다리는 길이 404m로, 산악형 출렁다리로는 가장 길다. 오유진 기자

강원도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 출렁다리와 울렁다리. 울렁다리는 길이 404m로, 산악형 출렁다리로는 가장 길다. 오유진 기자

2022년 3월 개통한 길이 270m의 전북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순창군청 제공]

2022년 3월 개통한 길이 270m의 전북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순창군청 제공]

전문가들은 출렁다리가 개장 초기에 반짝 효과만 내다가 외면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강신겸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출렁다리 설치 경쟁은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지자체판 미투(me-too) 전략”이라며 “초기에는 타이틀을 내걸며 관광객 유치라는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관광시장을 되레 쪼개면서 소멸과 공멸의 길로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개장 직후 1년간은 개장 이전보다 관광객이 늘지만, 점차 감소세를 보이다 7년이 지나면 오히려 개장 이전보다 관광객이 적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지자체들이 출렁다리에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강 교수는 “빠른 성과를 원하는 공무원들이 다른 관광 아이템보다 금세 효과가 나오고, 수익이 원활한 출렁다리를 급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 17일,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은 박정호(51·서울 양천구)씨는 “그나마 감악산 출렁다리는 수도권이라 비교적 가까운 데다가 산행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1년에 서너번은 오는데, 탑정호나 예당호까지 가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8일 폭우 중에도 소금산 울렁다리를 찾은 정일구(57·인천)씨는 “울렁다리가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고, 시설이나 먹을거리가 잘 구비돼 있어 다행”이라며 “비가 와서 아쉽지만, 주변에 다른 볼 것도 있고 해서 다음에 또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장호 출렁다리에서 만난 김수림(26·경기 고양)씨는 “국내 최장, 아시아 최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주변과 어울리고, 근처에 또 다른 쉬다가 갈 곳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주변에 별것 없으면 출렁다리가 그게 그거인 것 같아 안 가고 말겠다는 생각도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말은 타이틀보다 주변의 다른 여행지, 즉 연계 관광이 출렁다리를 찾게 되는 큰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강원도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길이 200m의 산악형이다. 오유진 기자

강원도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길이 200m의 산악형이다. 오유진 기자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은 “하드웨어만 만들기보다 스토리텔링과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들고 주변으로 연계가 가능해야 관광 시설이 살아난다”고 밝혔다. 이 점은 한국관광문화연구원도 보고서에서 지적하기도 했다. 이훈 원장은 특히 이웃한 지자체에서 박치기하듯 경쟁하는 것을 경계했다.

인접한 충남 논산·예산·청양·부여가 초대형 출렁다리를 서로 놓으며 맞불을 놓았고, 충북 충주댐 인근에서도 지자체 3곳이 출렁다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천시는 85억원을 투입해 옥순봉 출렁다리(222m)를 개통했다. 바로 옆 단양군도 충주댐 인근 시루섬에 150억원을 들여 길이 590m 출렁다리 설치를 추진하고 있고 충주시도 약 100억원을 들여 충주호 출렁다리를 건설할 예정이다. 전남 장성군은 2018년 장성호 일대에 제 1 출렁다리를 만든 지 2년 만에 불과 1㎞ 떨어진 곳에 제2 출렁다리를 개통하기도 했다.

사업이 중단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경북 안동시는 750m짜리 ‘세계 최장’ 출렁다리를 추진했다가 사업비가 당초 예상보다 두 배가 넘는 565억원까지 필요할 것으로 보이자 현재 건설을 보류했다. 해발 820m에 길이 32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장 긴 출렁다리라는 타이틀을 노린 팔공산 출렁다리 계획은 시민단체와 주민·불교계 갈등만 키우다 5년 만에 백지화됐다.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독개다리 스카이워크에서 한 방문객이 망원경으로 북쪽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독개다리 스카이워크에서 한 방문객이 망원경으로 북쪽을 살펴보고 있다. 김홍준 기자

문제는 출렁다리의 빛과 그림자를 밟으며 스카이워크도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스카이워크는 올해 7월 기준 전국에 53개소가 있다. 최근 5년간 37곳(전체의 70%)이나 새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출렁다리와 다를 바 없이 몇 곳의 성공 사례를 무차별적으로 가져와 설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2013년 부산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관심을 끌자 동해안을 따라 포항·울진·삼척·동해 등에 잇따라 스카이워크가 생겼다. 이훈 교수는 “복붙(복사하고 갖다 붙이기)하듯,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관광정책은 겉핥기 검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들이 ‘잘 되더라, 우리도 해보자’는 식으로 추진하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다른 지자체 관광시설의 매력도를 덩달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에 있는 다릿돌 전망대는 절벽에서 바다 위 20m 높이, 72.5m 길이로 투명 바닥을 설치한 스카이워크 형태다. 지난 8월 19일 방문객들이 다릿돌 전망대를 거닐고 있다. 김홍준 기자

부산 해운대구 중동 청사포에 있는 다릿돌 전망대는 절벽에서 바다 위 20m 높이, 72.5m 길이로 투명 바닥을 설치한 스카이워크 형태다. 지난 8월 19일 방문객들이 다릿돌 전망대를 거닐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자체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관광 정책을 짜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강신겸 교수는 “지역 관광 정책은 사실상 공무원들이 만드는 것인데 그 구조적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며 “다양한 상품과 자원이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얼마나 교육을 받고 전문성이 있는지, 다른 관광사업자와 기업 등 파트너들과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지역 관광 상품의 장래가 밝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일 어느 스카이워크 방문객의 말이 뼈를 때렸다. “입장료 2000원이 아깝다. 볼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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