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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있는 이 규제에…K소프트웨어, 해외에선 안 통한다 [Law談-강태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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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10년 내내 강산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강산의 변화에 둔감해져서 옆에서 바뀐 강산을 얘기하더라도 쉽사리 알아채기 어렵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boiling frog)’ 역시 마찬가지 얘기다. 세계가 변하고 우리가 처한 환경이 변하지만, 과거가 쳐둔 울타리에 갇혀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후회를 외칠 수밖에 없다.

소프트웨어진흥법은 대기업 소프트웨어 사업자가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셔터스톡

소프트웨어진흥법은 대기업 소프트웨어 사업자가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셔터스톡

소프트웨어진흥법이 대기업 소프트웨어 사업자들에 대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을 제한한 지 이제 10년 정도 흘렀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기업에 대해서 공공 소프트웨어 분야 참여를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은 통상의 진흥법처럼 ‘산업’을 진흥시키는 것보다는 좀 더 넓게 소프트웨어 산업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 전반에 대한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법 제목에 ‘산업’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애초 이 법이 제정된 것은 1988년인데, 당시에는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이라는 이름을 담고 있었다. 그 후 전면 개정을 통해 2000년도에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으로 전면 개정됐다. 또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에 산업 진흥을 넘어 소프트웨어 진흥을 위한 기반 및 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기 위해 전면 개정했고 그 과정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연히 예견된 것이었지만 이러한 대기업 사업 참여 제한 규제가 도입될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제도를 운영하는 중에도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발주자인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소규모 기업이 개발을 잘할 수 있을지라도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많은 회의가 있었고, 또한 상당한 기술력을 요하는 사업에 있어서는 중견 기업 수준의 기술력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벤처기업과 같은 소규모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대기업 소속의 경험 많은 인력들로부터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하루 이틀 동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난 2020년의 소프트웨어진흥법 전면 개정 과정에서나 심지어는 그 이후에도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를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해 소프트웨어 산업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국민 전체의 편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들이 이뤄졌다.

관련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매출과 직결되는, 어쩌면 일부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생존과도 관련되는 문제였다. 이처럼 대기업은 그 나름의, 중소기업은 또한 나름의 사정이 있었기에 정부의 여러 차례 제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타이어빌딩에서 열린 '제2차 디지털 국정과제 연속 현장 간담회'에서 소프트웨어기업 성장 및 해외진출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뉴스1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타이어빌딩에서 열린 '제2차 디지털 국정과제 연속 현장 간담회'에서 소프트웨어기업 성장 및 해외진출 지원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뉴스1

현재는 국내에서만 존재하는 대기업 진출 제한이라는 제도로 인해 해외로 나가서 거대 글로벌 기업들과 대항해야 하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그 실적을 갖추지 못한 채 해외 전선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 기술력이 알려진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단독으로 해외 시장에서 의미 있는 대형 프로젝트에 진입하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 적어도 글로벌 시장 진출의 필요성이 훨씬 강화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10년 전보다 더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는 불합리한 차별 규제를 혁파하기 위한 예시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포함돼 있다. 이 제도의 공과에 대해서는 여러 해 동안 여러 기관에 의해 연구가 됐고, 제도의 장단점 역시 충분히 드러나 있다. 관행적 제도를 새로운 시각에서 혁파하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Law談 칼럼 : 강태욱의 이(理)로운 디지털세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 다변화에 따라 복잡화해지고 고도화되는 법 규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법률 전문가가 바라보는 참신하고 다각적인 시선을 따라가 보시죠.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자문변호사/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저작권보호원 심의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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