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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게임물 등급 심사…콘텐트 산업 발목 잡는 '모래주머니' [Law談-강태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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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시국 동안 비약적 시장 확대를 이뤘던 콘텐트 산업은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콘텐트 산업 분야의 주가가 정체를 보이고 있고 야심 차게 국내 진출했던 해외 주요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제공서비스) 업체들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비롯한 콘텐트 산업의 성장 기대감이 꺾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오징어 게임' 대회 개최를 알리는 넷플릭스 동영상. 연합뉴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비롯한 콘텐트 산업의 성장 기대감이 꺾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오징어 게임' 대회 개최를 알리는 넷플릭스 동영상. 연합뉴스

이는 영상 콘텐트 뿐만 아니라 게임 콘텐트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콘텐트 산업 중 수출 역군인 게임 산업 역시 신작 출시에 애를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시장을 배경으로 한 P2E(Play to Earn·플레이로 돈 벌기) 게임이나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활용 게임 이외에는 별다른 혁신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콘텐트 산업의 정체 또는 위기는 시장이 활황이었던 코로나 시국 동안 묻어두기만 했던 규제 완화에 대해 다시 한번 고려할 계기가 되고 있다.

콘텐트 산업계가 지속적으로 재고 내지 완화를 요구해 왔던 한국의 고유한 규제 중에 콘텐트에 대한 등급 심의 제도가 있다. 한국에서 영상물이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등급 심의를 받아야 한다. 1962년에 개정된 헌법은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하여는 영화와 연예에 대한 검열을 허가할 수 있다”고 하여 명시적으로 검열을 허가하고 있었다. 그 후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87년에 새로이 개정된 헌법은 반대로 언론 출판에 대한 검열을 금지하는 조항을 명시했다. 그 후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라는 영화가 1989년에, 교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가 1991년에 각각 당시 영화법에 따른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을 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한 영화 사전 심의 제도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 후 영화진흥법의 개정을 통해 사전 심의제도는 상영 등급 부여 제도로 변경됐다.

전교조 문제를 다룬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1991년 당시 공연유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했다. 중앙포토

전교조 문제를 다룬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1991년 당시 공연유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했다. 중앙포토

이처럼 긴 역사를 가진 영상물에 대한 심의 제도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데,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비디오테이프로 대변되는 비디오물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보여지는 영상물 역시 사전에 등급을 받지 않으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TV를 통해 방송되는 영상물의 경우에는 방송사에 의한 자율 등급 분류가 가능하지만, 최근 OTT 서비스의 소위 ‘오리지널 콘텐트’와 같이 방송을 통해 먼저 공개되지 않는 영상물의 경우에는 여전히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한 등급 부여가 이뤄지고 있다.

과거 한국의 콘텐트 규제 법제는 영화, 비디오물과 게임물을 동일한 법률에서 동일한 규제 체계 하에 다루고 있었기에 영화, 비디오물과 게임물에 대한 규제 법령이 구분된 현재도 대체적인 규제 체계는 큰 틀에서 볼 때 여전히 유사한 규제 체계를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게임물의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의한 등급을 받아야만 일반 대중에게 서비스될 수 있다.

다만 게임물의 경우 일정 등급에 해당하는 게임물에 대하여는 민간에 의한 등급 분류가 가능하고, 모바일 게임과 같은 경우에는 민간사업자인 앱스토어 등에 의해 자체 등급 분류 방식으로 매년 수십만 건의 게임이 등급 분류가 이뤄지는 등 상당한 수준의 자율적인 등급 분류 체제가 정착돼 가고 있다. 나머지 영역에 있어서도 자율 등급 분류를 위한 법 개정안이 제안돼 있는 등 규제 완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사정이 좀 더 낫다고도 할 수 있다.

문화 콘텐트가 국민의 전체적인 문화 수준이나 특히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에게 미치는 정서적인 영향이 크기에 이를 사익을 추구하는 콘텐트 생산자에게만 맡겨둬도 되는지는 다소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권주의(paternalism)’에만 얽매이다 보면 어떠한 규제도 풀기 어렵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여러 건의 법안이 제출돼 콘텐트의 자율 등급 분류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규제 완화를 외치는 새 정부에서는 조속한 제도 개편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Law談 칼럼 : 강태욱의 이(理)로운 디지털세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 다변화에 따라 복잡화해지고 고도화되는 법 규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법률 전문가가 바라보는 참신하고 다각적인 시선을 따라가 보시죠.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자문변호사/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저작권보호원 심의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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