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얼마 버세요?" 무례한 질문…퇴사전 꼭 읽는 '잡지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Editor's Note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동네 가게를 찾아가 “한 달에 얼마 버세요?”라고 묻는 잡지가 있습니다.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입니다. ‘연구’라는 단어를 붙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려 300여 개의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창업 배경, 월세, 임대료, 콘셉트, 피벗(사업 방향 전환) 과정 등 가게 운영과 관련된 모든 것을 묻습니다.
특히 3년 차 가게를 주목합니다. 첫 창업한 소상공인의 평균 임대 기간이 2년이라는 점에 착안한 거죠. 폐업과 유지라는 생존의 기로에서 ‘한 번 더’ 도전을 택한 이들의 속내를 전합니다. 덕분에 MZ 세대가 ‘퇴사를 준비하며 읽는 예습서’가 됐습니다. 창업 1년 차 때 26만원이던 월 매출은 2019년 기준 2400만원까지 늘어났죠.
조퇴계 ‘브로드컬리’ 대표는 증권사 기업분석팀에서 일하다, 돌연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일과 행복 사이에 한 단계가 더 있다”고 말합니다. 조 대표를 직접 만났습니다.

※ 이 기사는 ‘성장의 경험을 나누는 콘텐트 구독 서비스’ 폴인(fol:in)의 “인터뷰어의 기획법” 3화 중 일부입니다.

브로드컬리 조퇴계 대표. ⓒ폴인, 최지훈

브로드컬리 조퇴계 대표. ⓒ폴인, 최지훈

희망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버텼다고 말하면 멋있겠지만, 진짜 무서웠어요. 그만두기가. 일단 쉼표를 찍고 한 줄 더 쓰자. 질질 끌면서 이어갔죠. 

창업 3년 차까지 수익 제로… “무서웠어요, 그만두기가”

Q. 왜 종이잡지였나요.  
원래 애널리스트를 꿈꿨어요.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기업분석팀에서 일했죠.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다 생각하고 입사했는데,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매일 놀랐습니다. 준비와 실전이 이렇게 다르구나.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무 잘하려고 하면 힘들어서 그만두게 된다. 수영하려 하지 말고, 입과 코를 잘 내밀고 숨을 쉬고 있어라. 그러면 언젠가 수영하게 된다.” 그 말이 제겐 충격이었어요.

애널리스트는 물리적으로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입니다. 또 업무 강도가 세서 많은 경우 40대가 되기 전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커리어를 전환하게 됩니다. 저 또한 언젠가 애널리스트로 승진하고 전문성도 쌓게 되면 그 이후엔 증권사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 가게들을 보고서 형태로 알리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개성 있는 동네 가게 다니는 걸 좋아했거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죠. 하지만 증권사에 취업을 해보니,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는 단계에선 그 이전에 무슨 경력을 쌓았든 초보일 수밖에 없더군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 지금 해야겠더라고요. 일단 이 일로 경력을 쌓아서 나중에 도전해봐야지 생각하면, 영영 하고 싶은 일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귀해질 테니까 실패에 대한 부담도 커질 것 같았고요. 돈은 금방 잃을 수 있지만, 시간은 매일 하루씩밖에 잃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왕 시작할 거면 시간이 많은 상황에서 시작하는 게 유리하겠다 싶었어요.

Q. 창업 3년 차까지 수익이 나지 않았던 거로 압니다.  
2016년 1월에 서점에서 26만 7000원의 수익 정산을 받았어요. 그땐 슬프기보다 기뻤습니다. 내가 낸 책을 누가 돈을 주고 산다는 게 신기했거든요. 그려왔던 계획이 실현됐구나 싶었죠. 힘들게 느껴졌던 건 3년 차 됐을 때였어요. 2017년 11월이었는데요, 이달 수익이 29만 1500원이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땐 당연히 잘 안 팔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업 3년 차가 됐는데 비슷한 수익을 내니 정산을 하다 눈물이 났습니다. 안 해봤을 땐 용기가 있었는데, 해봤는데도 안 되니 무서워졌어요. ‘아, 난 하고 싶은 일을 할 능력이 부족한가보다’ 싶더라고요. 당시 3종의 도서를 낸 상태였는데, 한 종도 초판 물량을 채 소진하지 못했고, 3년 동안 누적된 채무도 3천만원가량 있었어요.

Q. 그런데도 계속했던 이유는요?
희망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버텼다고 말하면 멋있겠지만, 진짜 무서웠습니다. 그만두기가. ‘나는 못했다, 실패했다’로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거든요. “아냐, 일단 쉼표를 찍고 한 줄 더 쓰자.” 질질 끌면서 이어갔죠.

Q. 문제가 뭐였나요?
제가 잡지를 만든 이유는 좋은 가게 하시는 분들, 공간 꾸려가시는 분들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였어요. 오래갈 만한 가게들이 계속 존재해주면 좋겠다, 그 생각이었죠.

그럼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되는 게 핵심인데요. 전 메시지에 집중한 게 아니라 메시지를 담는 그릇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릇을 만드는 전문가를 팀원으로 모셔놓고, 자꾸 제가 되지 않는 훈수를 두려 했던 거죠. 예를 들어 사진작가가 사진 찍을 때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제가 전부 컨트롤하려고 했어요.

3년 차 때 디자이너에게 “이번 책도 안 팔리면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이번만큼은 뜻대로 디자인해보길 바란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겠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하고는 맘속으로 조마조마했어요. 막상 나온 디자인이 너무 가볍지 않나 싶었거든요. 그 디자인으로 구간까지 표지갈이를 해 출간했는데요. 4호 내고 난 직후에 매출이 3개월 만에 30배가 뛰었습니다. 물론 기저효과가 있었겠지만 정말 큰 변화였습니다. 내용은 기존과 같았는데 말이죠.

디자인을 리뉴얼한 브로드컬리 1~5호. ⓒ브로드컬리

디자인을 리뉴얼한 브로드컬리 1~5호. ⓒ브로드컬리

그전까진 대형 서점에 유통도 안 했어요. 소규모 동네 책방에만 넣었죠. 북토크도 안 하고 전자책도 만들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좋다면 홍보나 유통은 부수적일 거라고요. 다른 활동을 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원고를 집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자존심 아닌 자존심 때문에요. 그런데 리뉴얼 후 성과를 보고, 제 생각을 바꾸게 됐죠.

‘진정성’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Q. 잡지 한 권 만들기까지 1년이나 걸린다고요.
2~3개월은 취재와 섭외를 하고, 1~2달은 인터뷰, 촬영, 보충 촬영을 합니다. 인터뷰 후 원고를 만들기까지 3~4개월이 걸리고요. 그러면 1년이 훌쩍 갑니다. 그래서 다른 원고 의뢰가 들어와도 잘 못 해요.

Q. 제주 편의 경우 두 달간 체류하며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조금 무모한 결정인 것 같은데요.
규모가 있고 요령이 있는 출판사는 아마 이렇게 안 할 거예요. 현지 컨택 포인트가 있겠죠. 혹은 이미 인지도가 있는 취재처를 섭외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겠고요. 큰 출판사의 방식대로 하는 건, 그들보다 더 잘하기 어렵겠다 생각했어요. 그냥 무작정 현장에 가서 우리가 궁금한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을 거 같은 가게를 찾아다녔습니다.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하나하나 들어 가재 찾듯, 그렇게 가게를 하나씩 찾았어요.

당시 제주도로 이주하셨던 분들은 도시의 번잡함이 싫어서 옮긴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알려지는 것도 싫고,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조용히 꾸리고 싶다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아예 명함도 안 받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100군데 이상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찾았는데 수십 차례 거절을 당했죠. 취재비도 워낙 빠듯해 렌터카를 빌릴 돈이 없었습니다. 전동 킥보드도 값이 비싸서, 발로 차는 수동 킥보드를 타고 제주도를 돌아다녔습니다. 거기서 더 아낄 수 있는 건 식비뿐이어서, 취재처 탐방을 제외한 식사는 비빔면 두 박스를 사다 놓고 먹었어요.

제주 취재 당시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수동 킥보드. ⓒ브로드컬리

제주 취재 당시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수동 킥보드. ⓒ브로드컬리

Q. 노력했는데도 생각한 만큼 좋은 답변이 안 나오면요?
저희는 인터뷰를 짧게는 5~6시간, 길게는 8~10시간씩 해요. 누구에게나 60페이지 정도에 담길 정도의 이야기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간을 운영하는 분이라면요. 10시간을 대화했는데도 원하는 만큼의 스토리를 뽑아내지 못하면 그건 편집부의 잘못인 거지, 그분들에겐 이미 좋은 재료가 있다고 생각해요.

Q.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질문들도 많이 보입니다.
무례하고 사적인 질문들도 많아요. 한 달에 월세는 얼마인지, 순수익이 얼마인지 같은 것들요. 창업비 말고도 유지하는 데도 돈이 들어가잖아요. 인터뷰하다 보면 답변한 매출에서 지출을 빼서 계산할 때 도저히 생활비가 안 나오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그럼 궁금해지죠. 주거는 어떻게 하느냐, 부모님과 같이 사느냐 이런 것도 물어봐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이런 것까지 여쭤봐야 독자가 가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공간 운영의 좋은 점이나 잘하는 점만 이야기하면 광고물이 되기 쉽고, 어려운 부분만 이야기하면 읽는 입장에선 푸념으로 들리게 됩니다. 다양한 각도로 공간을 조명하는 질문들을 통해 독자가 인터뷰이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저희 목표거든요. 이 가게는 꼭 한 번 가서, 커피 10만 원어치는 마시고 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성공했다고 봐요.

또 하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진정성 있게 전달했을 때 오는 감동이 있다고 봤어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은 과정을 설명하고 납득이 됐을 때 고객들이 느끼는 감동이 있거든요.

Q. 답변을 정리하며 특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분들에게 흔히 따라붙는 오해가 있어요. 하고 싶은 일 하면 아마 행복하리라는 거죠. 그러니까 돈을 좀 덜 벌어도 만족하며 살겠지, 싶고요. 쉬운 논리예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행복 사이에 한 단계가 더 있어요. ‘만족’을 해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해 아직 만족스럽지 않은데도 지금의 일을 계속 꾸준히 이어가는 경우, 존경스러워요. 멋짐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려 노력하죠.

Q. 지금까지 인터뷰한 로컬숍을 보며 어떤 걸 느꼈나요.
(후략)

더 많은 콘텐트를 보고 싶다면

영감을 주는 인터뷰 뒤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가 있습니다. 때론 날카롭고, 때론 진중한 질문을 통해 본질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는 콘텐트를 만들어냅니다. 폴인은 ‘인터뷰어의 기획법’ 시리즈를 통해 인터뷰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지금 폴인에서 확인하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