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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용호의 시시각각

윤 대통령의 돌파구는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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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 Chief 에디터

신용호 Chief 에디터

"대통령 노릇이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 언론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고, 저녁뉴스에 뭐가 나올지 이리 걱정될 줄도 몰랐다."

클린턴 첫해 지지율 추락 후 만회 #의회에 공들여 '정치적 승리' 이뤄 #윤 대통령, 타협 통한 책임정치하길 #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초 취임 후 친구에게 한 푸념이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대통령의 안방과 집무실』에 담긴 내용이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들으면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클린턴은 취임 4개월 만에 지지율이 36%로 추락한다. 부정평가는 50%에 이른다. 그 무렵 클린턴의 판단력은 흐렸고, 참모들은 우왕좌왕했다. 주요 사안은 힐러리의 동의가 필요할 만큼 퍼스트레이디의 영향력도 막강했다. 그럼에도 지지율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클린턴은 의회에 공을 들여 '큰 정치적 승리'라 불리는 적자삭감 예산안을 통과시킨다. 또 경제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가 국민에게 전달되면서 그해 9월 이후 다시 50%대 이상으로 올라선다. 클린턴의 임기 초 지지율 폭락이 행여 윤 대통령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지지율 회복이 가능하다는 선례는 고무적이지 않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이유는 이제 웬만한 국민은 다 안다. 갤럽은 인사 난맥, 경험·자질 부족, 경제·민생 소홀 순이라고 알려준다. 감정이 드러나는 오만한 태도, 윤핵관의 다툼, 메시지 관리 능력 부족 등은 평론가들이 끄집어낸 원인들이다. 여기다 콘크리트 지지층과 계파가 없는 특징이 더해지면 지지율 하락 요인이 집대성된다. 세간에선 '대통령답다'보다 아직은 '검찰총장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급하니 변한다. "(지지율에) 유념치 않았다"(지난 4일)더니 19일에는 "원인을 알면 잘 해결했겠죠"라며 답답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국무회의에서 "스타 장관이 돼라"며 소통 강화를 지시했다. 이유를 알았으니 하나씩 풀어가겠다는 의지라고 여겨진다. 주변의 지적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면 실마리가 보일 거다.
 그중에서 지지율을 올리려면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게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거다.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의회 존중 의사를 밝혔다. 지난 5월 국회 연설에서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앙숙이었던 처칠과 애틀리는 2차대전에서 전시 위기 연립내각을 꾸려 대연정을 했다). 대선 직후 박병석 전 국회의장을 만나선 "의회주의를 늘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야당과 대화한 걸 본 적이 없다. 사실 여소야대에선 대통령이 일을 못한다. 여소야대에서 출발한 김대중(DJ)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야당을 향해 "간절히 부탁드린다. 모든 것을 상의하겠다. 1년 만이라도 도와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뭘 하고 싶어도 국회에서 뭘 해줘야 한다"는 걸 늘 염두에 뒀다. 왜 그랬겠나. DJ뿐인가. 김영삼·노무현 대통령에게도 타협은 늘 기본이었다. 윤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정치가 타협이고 그게 협치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상대가 원하는 걸 줘야 한다. 막스 베버의 논리대로 주장만 외치는 건 신념정치일 뿐이고, 타협을 통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책임정치다.
 사실 지금 여야를 보면 협치가 가능하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여권의 입장에선 야당의 거센 공세와 비난이 참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야당 탓만 해선 안 된다. 무능한 거다. 국회 마비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을 위해 야당에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어떻게 낮을 수 있을까.
 야권의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이 최근 필자에게 "대통령이 역할을 해서 국회에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으면 금방 지지율이 오를 텐데…"라고 한 말이 며칠 귓가에 맴돌았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데도 대통령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울림이 클 거다. 손을 내밀어도 야당이 외면한다면 그건 국민이 평가한다. 검찰총장은 행정을, 대통령은 정치를 하는 자리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