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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더 많은 우영우가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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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영국 사회학자 콜린 반스는 미디어 속 장애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11가지로 유형화했다. ‘불쌍한, 사악한, 폭력의 대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초능력인, 자기혐오와 장애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등 주로 부정적·차별적 이미지였다. 반스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애화의 책임이 미디어에 있다’고 강조했다.
책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케이티 엘리스)에 따르면 2017년 미국 네트워크 TV와 OTT 오리지널 드라마 중 고정적인 장애인 캐릭터는 1.8%로, 미국 총인구 대비 장애인의 비율 20%에 한참 못 미쳤다. 장애인 역할을 실제 장애 배우가 맡는 경우도 5%였다(2016). 미국 사정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 HBO의 글로벌 메가 히트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장애인에 대한 클리셰를 깨 호평받았다. 저신장증 배우 피터 딘클리지가 ‘반영웅’ 티리온 역을 열연해 시즌8까지 에미상 최우수 조연상을 네 번 수상했다. 그저 그런 감초 역할이 아니라 중추적 배역이었다. 장애인 배우가 장애인을 연기했고, 캐릭터도 전형성을 벗어나 ‘다른 어떤 캐릭터에 못지않게 복잡한 인물’로 그려졌다. '왕좌의 게임'은 장애 인식 제고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미디어액서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는 천재적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는 천재적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는 천재 변호사 이야기인 케이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 돌풍이다. 0.9%로 출발한 시청률이 6회 만에 10%를 넘었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시간 글로벌 1위에도 올랐다. 극본ㆍ연출ㆍ연기 3박자에, 장애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통했다. 다양성·소수자성이 문화 트렌드를 넘어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웅변한다. 드라마에는 우영우(박은빈 분) 외에도 미혼부, 레즈비언 커플 등 소수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사실 그동안에도 우영우처럼 자폐지만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증후군 소재 영화ㆍ드라마들은 있었다. 그러나 기존 드라마들이 예외적 능력을 갖춘 장애인의 인간 승리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우영우’는 장애를 가진 인물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주변인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함께 성장해 가는지에 집중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를 그리며 한 단계 나아간 드라마다. 법정 드라마로서의 묘미는 우영우의 허를 찌르는 통찰에서 드러나는데, "법은 마음을 중시합니다"라는 그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물론 장애계 일각에서는 ‘우영우 신드롬’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은 변함없으며, 장애인을 일반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당사자성’에 한계가 있음을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 최근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농인과 발달장애인이 배우로 출연했으며, 공연 예술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코다’에도 남우 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 등 농인 배우가 다수 출연했다. 농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코다ㆍCODA)의 이야기였다. 그간 장애인 드라마ㆍ영화들이 장애 현실에 대한 묘사보다 ‘장애인스러움’을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연기해낸 비장애인 배우의 탁월함으로 더 주목받곤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사자성의 의미는 크다. 중세시대에는 남자 배우가 여자 역할을 하고, 과거 할리우드에서는 백인 배우가 흑인 역할을 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등 '소수자 배제ㆍ대체'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영우’는 충분히 상찬받아 마땅한 드라마다. 장애에 대한 편견 없는 묘사만큼, 드라마의 판타지로서의 특수성도 중요하다. 시작도 하기 전 이 드라마에 대해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한 장애인 단체가 “자폐 차별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논평했던 것은 얼마나 적절했을까. 우리에겐 더 많은 우영우가 필요하고, 드라마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 덧붙여 혹 개인적 감상평이 허용된다면 내 최애 배우 박은빈, 최고다!

장애에 대해 달라진 사회적 시선 # 다양성 제고라는 시대정신 입증 # 당사자성 한계 등 새 화두 던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