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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트럼프의 부활'이 두려운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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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석열 정부 앞에 펼쳐진 최악의 안보 위협은 무엇일까. 흔히는 북핵 소형화,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이 꼽힌다. 그러나 아직은 대중의 관심 밖이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몰락과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부활 가능성이 최대 안보 리스크로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 적잖아 #당선되면 주한미군 철수 추진할 듯 #독자적 자주국방 방안 강구해야

현 정부의 안보 정책은 튼튼한 한·미동맹에 뿌리를 둔다. 첫 안보 공약이 “한·미 연합 방위 태세 재건 및 북핵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일 정도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의 초점이 여기에 맞춰진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하여 요즘 양국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 특히 확장억제 전략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 짜내기에 바쁘다. 미 핵운용 계획 수립 시 한국 측 참여,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협의체 활성화, 전술핵 배치를 위한 인프라 사전구축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다수로의 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권 재도전을 노리는 트럼프는 지난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 미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P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다수로의 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권 재도전을 노리는 트럼프는 지난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 미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AP

물론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도 존재한다. 특히 임박했다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핵 소형화를 위한 거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북한이 여차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때리겠다고 위협하며 남쪽에 전술핵을 터트릴 위험도 없지 않다. 그래도 체제 붕괴는 피할 수 있다고 김정은이 오판한다면 말이다.
이에 대해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조셉 나이는 이렇게 반박한다. “주한미군 2만8500명의 존재가 확장억제에 신뢰성을 준다”고. 즉 북한이 전술핵을 쓰면 수많은 미국인이 희생되며 이럴 경우 미국은 북한을 궤멸시킬 게 뻔해 북한이 함부로 못 나온다는 주장이다. 명쾌한 논리다. 하지만 여기엔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주한미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그럼 이들이 없어지면 어쩌나.
“방위분담금을 더 안 내면 주한미군을 빼겠다”, “한반도에 전략 폭격기 띄우는 비용을 대라” 등등, 툭하면 돈 달라던 트럼프 대신 바이든이 지난해 초 집권하자 한국인 대다수는 환호했다. 부드러운 신사의 풍모에 동맹국 입장을 존중하는 그였기에 한·미관계가 나아질 거로 기대한 까닭이다. 예상대로였다. 바이든은 윽박지르지 않는 것은 물론 튼튼한 한·미관계를 외치며 한국 측을 기쁘게 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의 중국 봉쇄 참여로 화답했다. 재계도 대규모 대미 투자로 거들고 나섰다. 요즘처럼 양국 관계가 좋은 적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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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바이든의 인기가 사상 최악으로 2년 뒤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전과 관련, 섣부른 러시아 제재로 전 세계 유가를 뛰게 했다. 그 결과 미국 물가는 9% 이상 치솟으며 최악의 인플레가 발생했다.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며 바이든의 지지도는 3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낙태권을 인정하는 역사적인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 뒤집혀 진보층의 불만이 쏟아진다. 지금 같아선 바이든 재선은 물건너갔다.
반면 지난 14일 대선 재도전을 선언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적지 않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공화당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49%를 얻어 2위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25%)의 두 배를 기록했다. 게다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추진 중이다. 2024년 대선까지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현 집권 민주당이 질 공산이 크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어떻게 될까. 그간의 발언 등을 볼 때 주한미군 철수가 추진되고 확장억제 전략은 약화할 게 틀림없다. 설사 트럼프 아닌 제3의 인물이 집권하더라도 바이든처럼 확장억제 전략을 전폭 지지할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그러니 현 정부도 2년 뒤 사라질 바이든 정권에 올인할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재집권까지 염두에 두고 판을 짜는 게 현명하다. 누가 미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흔들리는 안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독자적 핵 개발까지 포함, 진정한 자주국방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