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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희귀 유전자 변이 폐암 환자, 항암 신약 접근성 높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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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전문의 칼럼 김영철 화순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환갑이 채 되지 않은 한창 나이의 환자였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폐암이 이미 뇌까지 전이된 상태로 방사선 치료 후 항암 치료까지 해야 했다. 널리 알려진 유전자 변이는 없었던 터라 이미 항암화학요법과 면역항암제까지 써봤지만 세 번째로 바꾼 치료제마저 듣지 않아 폐암은 악화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더는 손쓸 수 없을 상황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행히 이 환자는 희귀 유전자 변이인 MET 변이를 찾았고, 이에 맞는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첫 추적관찰에서 암의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고 오랜만에 환자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이 환자는 현재까지도 표적 치료를 지속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폐암이라는 질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환자마다 서로 다른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치료와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유럽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들의 1차 치료로 표적치료제가 우선 권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환자의 2~3% 정도에서만 확인되는 MET 변이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다른 약제에 치료 반응을 잘 보이지 않던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겼다.

바야흐로 정밀 의료의 시대다. 환자 각각의 유전적 특성에 맞는 맞춤 치료를 적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마땅한 치료 옵션이 없던 치료 영역에도 점차 선택지가 넓어지는 지금,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바로 신약의 접근성 문제다.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염려돼 권유조차 조심스러운 것이 진료 현장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의 문턱 앞에서 고가의 치료 비용 때문에 선택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다양한 치료제의 개발로 생명 연장은 물론 완치율도 조금씩이나마 높아지는 시대가 됐지만, 폐암은 여전히 예후가 좋지 않다. 특히 그동안 희귀 변이를 가진 환자들은 치료제의 부재에 더해 유병자가 적다는 이유로 소외돼 왔다. 가까스로 희망의 끈을 찾은 희귀 유전자 변이 폐암 환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도록 항암 신약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정부 부처와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김영철 화순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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