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칼럼

난파선과 제티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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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12월 18일 미 해군 주력 기동함대가 필리핀 인근 해역에서 잘못된 기상정보로 태풍의 눈에 갇혔다. 가랑잎처럼 흔들리는 거함들이 동반침몰할 위기였다. 이때 노련한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갑판 위의 무엇이든 바다에 던져라." 대포와 식량 등 무거운 것들이 마구 배 밖으로 버려졌다. 전복을 막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이 덕분에 그나마 최악의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 에릭 두르슈미트)

영어에 '제티슨(Jettison)'이란 단어가 있다. 난파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화물을 주저 없이 바다에 던져 배의 무게를 줄이는 극약처방이다. 승객의 생명을 제외한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폐기하는 게 원칙이다. 국제해상보험업계가 이런 폐기물을 '젯섬(jetsam)'이라 따로 분류할 만큼 뱃사람들에겐 익숙한 용어다. 비행기도 비상착륙 전에는 반드시 제티슨을 한다. 항공유를 모두 공중에 쏟아부어야만 불시착에 따른 화재나 폭발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항구도시 부산에서 자랐고, 한때 요트가 취미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 낱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지금 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바로 제티슨이 아닌가 한다. 질서 있는 퇴각을 고민하라는 이야기다. "후퇴는 가장 치열한 전투보다 더 많은 병력과 장비의 손실을 가져온다." 유명한 군사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말이다. 외환위기나 신용카드 대란도 정권 말기 후퇴 과정에서 일어났다. 참여정부 역시 해가 서산에 기우는데 부동산부터 북한 핵까지 온갖 현안들이 엉망진창이다. 대통령 입에서 "20%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라고 무시하느냐"는 신세타령이 나올 정도다. 조난의 낌새를 눈치챈 열린우리당에선 참회 신드롬이 한창이다. 선장인 대통령을 제외하곤 모두 본능적으로 난파 위기를 느끼는 분위기다.

'한국호' 침몰을 막으려면 이제 '제티슨'밖에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선장은 자꾸 더 무거운 짐을 싣겠다고 욕심을 부린다. 제대로 된 선장이라면 기우뚱거리는 뱃전에서 "나도 (다시) 뜰 날이 있을지 아느냐"고 말할 수는 없다. 지켜보는 승객들만 조마조마할 뿐이다. 혹시 배가 뒤집히지 않을까, 선장보다 승객들이 더 조바심치고 있다.

제대로 제티슨을 하려면 젯섬들부터 과감히 바다에 던지는 게 순서다. 대다수 국민이 고개를 돌리는 건설교통부 장관이나 청와대 홍보수석을 왜 그리 막판까지 싸고돌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헌법재판소장이나 KBS 사장의 임명을 강행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책들 역시 제티슨 대상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 작전통제권 단독행사로 상징되는 자주 지상주의, 정권 재창출을 겨냥한 과도한 욕심을 깨끗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는 인사권, 이것까지 내려 놓을 각오를 해야 정말 제대로 된 제티슨이다. 갑판 위를 깨끗이 치워야 배가 복원력을 회복할 수 있다.

제티슨을 하려면 선장의 단호한 결심이 우선이다. 그러나 선장은 "북한 핵무기에도 군사 균형은 깨지지 않는다" "오늘이라도 작통권 단독 행사가 가능하다" "부동산은 잡는다. 대책을 세우고 있다"며 배짱이다. 요동치는 뱃멀미에 승객들만 고통을 겪고 있다. 하기야 대통령을 잘 아는 일부 여당 의원조차 "노 대통령은 주위에서 하라고 하면 거꾸로 하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넋두리한다.

그렇다면 후퇴의 미학이나 제티슨은 승객들의 영원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선장이 더 이상 호소와 간청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승객들에겐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거친 바다가 제풀에 잔잔해지도록 주기도문이라도 간절히 외워야 하는가. <청와대에 계신 대통령이시여 … 국정에 임하옵시며 강남에서 이룬 집값 거품이 전국 곳곳에도 이루어졌나이다 앞으로 세금만 더 때리지 마옵시고 정부가 북한 핵실험을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남녘에도 햇볕정책을 주시옵고 이상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해주옵소서 대개 모든 책임과 원인이 대통령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