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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쿠쿠홈시스 - '코끼리표' 몰아낸 밥솥 부자(父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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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경남 양산 쿠쿠홈시스 연구소에서 구자신 회장(右)과 구본학 사장이 함께 신제품 앞에 섰다. 지난 1일 구 사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쿠쿠는 본격적인 2세 경영체제로 전환했다. [송봉근 기자]

전기압력밥솥 국내 시장을 평정한 쿠쿠. 그러나 정상에 오르기까지 적잖은 고비를 넘어야 했다. 쿠쿠의 전신은 1978년 설립된 '성광전자'다. 그때부터 20년간 성광전자의 제품은 'LG'브랜드를 붙여 팔렸다. 그래서 성광전자를 아는 소비자들은 거의 없다. 생산품 전량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납품했다. 창업자 구자신(65) 회장은 당시를 "혹독한 시집살이 였다"고 회고했다.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살림'은 제대로 배웠다는 뜻이다. 구 회장은 "쿠쿠가 확보한 기술특허 등 200여개의 지적재산권은 LG의 까다로운 품질 눈높이를 맞추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LG는 노하우도 많이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82년 한 가정에서 불이 난 사건은 성광전자를 부도 위기로 몰았다. 화재원인이 불분명했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전기밥솥이 화재의 주범으로 꼽혔고 결국 납품길이 막히고 말았다. 시장에 내놓은 물량도 거둬 들였다. 호된 시련을 겪은 쿠쿠는 이때부터 '독립'을 준비했다. OEM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94년엔 '쿠쿠'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케팅에 자신이 안서 쿠쿠의 출시는 4년 뒤로 미뤄졌다. 97년 외환위기는 쿠쿠의 경영에 타격을 줬다. 내수가 크게 줄자 밥솥의 판매량도 곤두박질쳤다. 사내에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때 사원들은 "내 이름 한번 달아보지 못하고 이대로 죽기는 억울하다"며 "임금을 깎아도 좋으니 우리 브랜드를 한 번 내보자"고 나섰다. 구 회장은 고심 끝에 98년 '쿠쿠'를 선 보였다. 하지만 초기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리점 사장들은 "경품이라도 끼워 팔자"고 아우성이었다. 이때 구회장은 승부수를 뒀다. 광고였다. 십수년간 회사가 알뜰히 모아둔 200억원의 유보자금 중 절반 가까운 돈을 광고에 쏟아부었다.광고투자 전략은 적중했다.

출시 1년만에 쿠쿠는 한때 주부들이 선망하던 일제 '코끼리 밥솥'을 몰아내고 시장을 석권했다. 현재 국내 가정에서 쓰이는 전기밥솥의 70%는 쿠쿠다. "쿠쿠하세요"란 광고문구는 이젠 '밥을 하다'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다. 지난해 국내에서만 218만대의 밥솥을 팔았다. 이를 위해 쿠쿠는 소형가전업체론 드물게 소비자의 불만 사항을 접수 24시간 이내에 해결해주는 애프터서비스를 했다.

2002년 중국 칭다오에 생산공장을 마련한 쿠쿠는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밥솥시장의 규모가 연간 350만대 안팎에서 정체될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연간 2500만대 이상의 전기밥솥이 팔리는 중국시장에 대한 공략도 차근차근하고 있다. 지난해 상하이에 마케팅 본부를 열고 유명 백화점과 할인점을 뚫었다. 선양, 옌지 등 5개 지역에는 직영 애프터서비스 센터를 갖췄다. 전기밥솥의 원조 시장인 일본의 400여개 양판점에서도 쿠쿠가 팔리고 있다.

구회장은 최근 쿠쿠의 경영을 장남 구본학 사장에게 맡기기로 결정 했다고 말했다. 그는 "힘이 있을 때 물러나야 훈수도 잘 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회계사로 일했던 구 사장은 98년 회사에 합류했다. 쿠쿠의 독립에 맞춰 귀국한 것이다. 구 사장은 "중국 시장은 세계시장 진출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며 "지역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동남아와 유럽 시장도 파고들 것"이라고 말했다. 쿠쿠는 지난해 2700억원의 매출액에 21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양산=임장혁 기자<jhi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밥솥 어떻게 변해왔나

밥만 짓던 '밥통'서 종합 조리기구로

스위치를 넣으면 자동으로 밥이 되는 기계는 1950년대 중반 일본에서 개발됐다. 당시에는 밥을 하는 전기밥솥과 보온이 되는 전기밥통이 따로 있었다. 국내에서는 70년대 초반 한성.LG(당시 금성) 등이 이런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70년대 중반부터는 취사와 보온이 함께 되는 제품이 선을 보였다. 그러나 유난히 차진 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압력솥으로 밥을 지은 다음 전기보온 밥솥은 밥 보관용으로 쓰는 쓰는 집이 많았다. 가스압력솥의 장점과 전기보온밥솥의 편리성을 결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업체들의 과제였다. 성과는 93년에 나왔다. 대웅이라는 업체에서 첫 전기압력밥솥을 출시했다. 쿠쿠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생산기술을 개발했지만 여러 이유로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이후 밥솥의 기능은 더욱 진화됐다. 쿠쿠는 최근 천연 곱돌을 깎아 내솥을 만들어 가마솥과 비슷한 밥맛을 내는 제품을 내놨다. 이 제품은 PC와 연결해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은 조리법대로 각종 찜과 잡채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기능도 있다. 이창용 쿠쿠기술연구소장은 "밥솥이 종합 조리기구로 변모하고 있다"며 "앞으로 조리용과 취사용을 구분해 2개의 밥솥을 두는 집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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