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의 체온이 깃든 「생활」속의 꽃-윤재철 『꽃이…』|농촌적 삶에 닻 내린 서정주의-이재무 『부엉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사물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물의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가렴, 사물의 물리적 속성을 캐거나, 그것이 존재하는 철학적 근거를 찾고자 노력한다. 사물에 대한 그러한 과학적 또는 존재론적 바탕을 탐구하는 것은 사물 자체에 대한 이해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들의 집합체라고 할수 있는 이 세계의 완전한 이해를 위한 필요조건이랄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물의 「있음」을 온당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사회적 조건과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 이 말은, 달리 말하자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나아가 계층과 계층 사이의 관계를 포괄하면서한 사물을 이해해야 함을 뜻한다. 이는 어느 관점이나 특정한 이념들을 갖고 사물을 이해하는 태도와는 전혀 별개의 태도이며, 또한 사물을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신비스런 독립체로 보는 태도와도 무관한 태도다.
이런 태도들은 각각 사물을 자신의 관점 속으로 구속시키거나, 구체적인 삶과 유리된 몽상의 공간으로 몰고 간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물들을 이 세상 속의 인간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인간 관계란 다름 아닌 「생활」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사물들이란 구체적인 「생활」속에서 그것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윤재철의 시 「꽃이 된다」 (『문예중앙』가을호)는 사물의 온전한 이해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생활」 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시인의 자기 깨우침을 노래한 시다. 시인이 바라보는 「꽃」은 생활과 무관한 아름다움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인이 품고있는 어떤 이념에 의해 꾸며진 꽃도 아니다. 시인은 『시골 아낙네들이 모여 /꽃 이야기를 할 때/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하며/바래고 해진 몸 빼 하며/마루에 걸터앉아 잠시/꽃 얘기를 할 때/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접시꽃 과꽃 꽈리 꽃/꽃 얘기를 할 때/비로소 꽃은 꽃이 된다화…』고 노래한다. 이때「꽃 이은 단순히 환상을 위한 꽃이 아니라, 노동과 생활이 깃들여 있는 휴식의 대상으로서의 꽃이다. 그「꽃」은, 다시 말해 힘든 생활살이 속의 휴식 공간에 핀 꽃이다. 그래서 그의 꽃에는 인간과 사람살이의 역사가 깊이 배어있다.『…/갈라지고 뒤집어지고 다 닳아진/육순 장모님의 손톱에/봉숭아 꽃 물로 바알갛게 물들 때/장난 삼아했다며/다시 장화 신고 논으로 나가는/장모님의 얼굴이 바알갛게 물들 때/비로소 꽃은 꽃이 된다.』시인의 「꽃」은 이처럼 노동하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핀 꽃이어서, 거기엔 인간 생활의 과거와 현재가 있고, 삶의 체온이 흐르고 있다.
한편 『현대시 세계』 (가을호)는 「90년대 젊은 시인들 87인선」을 부록으로 묶고 있다. 그곳에 실린 시인들은 저마다의 감각과 시선으로 이 세상과 만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들 시의 공약수를 줄여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개략적으로 말해 그 시들은 (신) 감각주의의 징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에 반해, 거기에 실린 이재무의 시는 고집스럽게 전통적 서정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해 그의 시는 자신의 과거의 농촌적 삶에 닻 내리고 있는 농촌적 서정주의의 시다.『…간간이 바람이 불었고/뒷산 삭정개비가 부러졌다/그런 날 밤에는/처마 끝에 매단/시래기 다발이 떨어져/뜰팡 어지러웠꼬/일 나간 아버지 돌아오지 않았다』 (「부엉이」). 농촌이 붕괴의 위협 속에 처해 있고 도시의 비대화가 더욱 가속화할 오늘날, 시인의 서정주의는 지금 유행하는 신 감각주의와 길항·갈등할 것이다. 세계의 시련이 시인의 농촌적 서정을 더욱 깊게 하기를 빈다. 임우기 <문학 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