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서 공부하다 범법자 돼"...경찰도 괴로운 '코로나 크리미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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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 영업 제한 조치를 거부하고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 영업 제한 조치를 거부하고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수사다운 수사를 할 시간이 없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최근 동료와 나눈 푸념이다. 올해까지 예상되는 업무를 따져봤다는 그는 “수사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지만, 감염병예방법 관련 수사가 워낙 많아 이 일만 한동안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밀려든 ‘코로나 크리미널(Criminal·범죄자)’ 수사에 치여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 크리미널 <下>

“업무 과중”…코로나 크리미널 수사 불만

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경찰 이미지. 중앙포토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 사이에서는 “업무 과중”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업소 단속이나 고소·고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수사 대상자가 하루에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씩 쏟아지고 있어서다. 조사 인원이 많다 보니 고려사항도 한둘이 아니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아 한 번에 10~20명 수사하는데 다들 생업이 있어 일정 잡기도 쉽지 않다”며 “그들을 압박해 수사할 사건도 아니라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사건도 많고 수사 대상자도 많아 올해 말까지 일이 줄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수사력 낭비를 지적하는 내부 의견도 나온다. “가뜩이나 수사 인력이 부족한데 ‘이런 것까지 수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일선서 과장)는 것이다.

카페서 공부하다 고발…경찰도 “이게 과연 맞나” 죄책감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음식점 상인들이 지난 2월 21일 코로나19 영업 제한시간인 오후 10시 이후 영업점 불을 켜고 점등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음식점 상인들이 지난 2월 21일 코로나19 영업 제한시간인 오후 10시 이후 영업점 불을 켜고 점등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계도보다는 검거에 공권력이 쏠린 것에 대한 자성론도 내부에서 제기된다. 수사 대상자 가운데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아 그들을 조사하는 일부 경찰관은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감염병예방법 수사를 맡은 한 경찰관은 “생업 때문에 가게를 열다가 단속·고발된 사장님들이나 카페에서 영업시간을 넘겨 공부하다가 단속에 걸린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런 사람들은 경찰서를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 순식간에 범법자가 됐다.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이게 과연 맞나’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라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생활고에 빠진 자영업자들의 고통에 국가기관이 둔감했다는 반성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먹고 살려는 사람을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때려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솔직히 중대범죄도 아니고 법안에 ‘예방’이라는 말이 있듯 예방적 목적이 우선시돼야 하는데, 마치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처럼 몰고 간 데 대해선 문제의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죽겠다 싶을 때 문 열었는데 범법자 돼”

실제로 일부 피의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3월 영업시간을 어기고 장사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50대 A씨는 “코로나19 때 정부 정책에 협조하면서 월세 한 번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렇게 살다간 죽겠다’ 싶을 때 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에게도 봉급 안 주고 국가에 무조건 봉사하라고 하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라고도 했다.

A씨는 조사 당시 경찰로부터 “관련 수사를 하는 경찰이 은행보다 더 바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이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A씨는 “우리(자영업자)를 잡아서 코로나19가 잡힌 것도 아닌데 왜 고통은 못 배우고 힘없는 이들만 감당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합의 빠진 K방역…사면론도 대두

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식당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식당의 모습.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

일각에선 K방역 집행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벌은 원칙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며 “국민 법감정이 있기 때문에 상식적이지 않고 악질적인 경우에만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때 정부 정책은 억압적이었고 일방적으로 국민 자유와 맞바꾼 것”이라며 “그런 충돌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설득 과정이 있어야 했다”고 했다.

생업을 이유로 감염병예방법을 어긴 범법자들에 대해 특별사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에 다다른 만큼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새 정부가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 특별 사면과 복권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 교수는 “서민생계형 형사범에 대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하기도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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