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도깨비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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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서울 난곡, 남대문 상가, 도봉구 방학2동, 그리고 중구 황학동의 공통점은.

A:도깨비 시장.

서울에 여러 '도깨비 시장'이 있지만 역시 으뜸은 청계천 8가 주변의 황학동 재래시장이다. 1천5천여개의 점포.노점이 있는 곳이다. 망가진 물건도 이곳을 거치면 감쪽같이 새 것이 된다고 해서, 탱크.미사일 말고는 모든 걸 구할 수 있다고 해서 '도깨비'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곳의 변천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다이제스트이기도 하다.

#1 전쟁 조선.일제 때까지 황학(黃鶴)이 노닐던 논과 밭이었다. 시장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한국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청계천 변에 모여들어 주로 미군 물품과 고물을 취급하는 상점을 세운다. 미군을 상대하는 사창가도 생겨난다.

#2 수출과 새마을운동 60년대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가발(假髮) 시장이 선다. 여인네의 머리카락이 이곳을 거쳐 미국.일본으로 팔려나간다. 이 시기에 대(大)화재가 나 사창가는 완전히 사라진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자 농공단지에서 생산된 민속골동품이 밀려들면서 골동품시장이 형성된다. 당시 2백여개의 전문상가가 성업했을 정도다.

#3 올림픽과 재개발 88 서울올림픽과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은 골동품 시장을 인사동과 장안동으로 옮긴다. "새 문화거리를 만든다"는 명목이었다. 그 자리를 공구.모터 등 기계상이 대신한다. 90년대 들어 왕십리와 다른 청계천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일터를 잃은 상인들이 대거 몰려와 좌판을 벌인다. 노점상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3년 청계천 복원사업이 진행되면서 우선 노점들이 쫓겨날 처지다. 노점상들은 공사 강행에 맞서 '육탄 저지'를 선언한 상태지만 힘이 부쳐 보인다. 점포들도 곧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운명이다. 사라지기 전 도깨비 시장에 한번 가보자. 미군물품 고물상, 가발상, 골동품점, 기계상, 성인용품점…. 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역사가 아직도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오늘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선 이런 문답이 이어진다.

Q:"최음제는 어디서 파나요." "군복이나 미군 방탄모를 살 곳은."

A:"황학동 도깨비 시장에 가보세요."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