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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온 걸 환영"...푸틴 대군 울린 그 남자, 49세 '철의 장군'[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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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무기로 중무장했다. 적들에게 재블린·스팅어·NLAW를 선물하겠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획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던 올 초 발레리 잘루즈니(49)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동·남·북 3면에서 밀고 들어오자, 실제로 재블린·스팅어·NLAW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군을 격퇴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70여 일간의 전투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군 수장인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주목받는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그를 '철의 장군'이라 부르고,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서도 1순위에 꼽힌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이 지난 2021년 10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이 지난 2021년 10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만났다. 로이터=연합뉴스

"서방 무기로 러시아군 '무적 신화' 산산조각냈다" 

잘루즈니 사령관의 방어 전략은 전쟁 전 절대 불리하다고 여겼던 우크라이나군의 입지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어깨에 메고 적의 전차·전투기를 겨냥하는 휴대용 미사일 도입은 그중 최고의 전술이었다. 기동력을 앞세운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기갑부대가 오는 길목을 선점하고, 미국과 영국에서 도입한 재블린·NLAW 등으로 격퇴했다. 이로 인해 수일 만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려 한 러시아군의 전략은 수포가 되었으며, 수십㎞ 밖에 발이 묶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랑하는 '세계 2위' 러시아군은 체면을 구겼고, 결국 지난달 초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러시아군은 3일 치 식량만 준비하고 48시간 안에 우크라이나를 정복하려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계획을 좌절시켰다"며 "현대화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무적 신화'를 산산조각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키이우 지역에서 재블린을 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키이우 지역에서 재블린을 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 로이터=연합뉴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소련 해체 후 "1943년 전투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군의 현대화에 앞장섰다. 재블린 등 휴대용 무기 도입은 그 연장선이다. 또 병사들이 서방 무기 사용을 어려워하자 "영어를 배우자"고 독려했다. 벨라루스 독립 매체 나샤니바는 "외국어를 잘하면 간첩으로 의심을 받는 벨라루스 군대와는 대조된다"고 전했다. 미국 폴리티코는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수십 년 동안 우크라이나군을 잠식하고 있었던 소련군 잔재를 청산하고 완전히 서구식으로 재편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라고 전했다.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적은 '러시아' 각인 

지난해 말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의 전면 침공을 우려할 때,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큰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매체들이 '우리 군은 얼마나 준비가 됐나' 묻자 그는 "우리 병사들은 현대화된 신무기로 중무장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 전쟁에 돌입하게 기민하게 훈련된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재블린·무인기(드론) 등 서방 무기로 기계화된 거대한 러시아군을 무찔렀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왼쪽)과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 잘루즈니 페이스북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왼쪽)과 올렉시 레즈니코프 국방장관. 잘루즈니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군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자 서방의 시선도 변했다. 개전 초기엔 지원을 꺼린 곡사포·탱크 등 중무기 지원이 쏟아지고 있다. 또 지난달부터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총공세를 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잘 막아내고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군은 매우 영리하고 민첩하며 창의적으로 방어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힘입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3월 초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중장에서 대장으로 승진시켰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지휘하는 우크라이나군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러시아군과 대조된다. 그는 지난 8년간 돈바스 전쟁을 겪으며, 소규모 부대 전투에선 병사 개개인이 주도권을 갖고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총사령관이 된 후 사령부 동의 없이 최전방 부대가 적군에 발포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 나토군과 훈련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부사관을 키웠다.

돈바스 지역 최전방에 나간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우크라이나육군 홈페이지

돈바스 지역 최전방에 나간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 우크라이나육군 홈페이지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1973년 우크라이나 북서부 지토미르에서 태어났다. 당시 소련군으로 복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련군이 될 거라 여겼지만, 스무살이 되기 전인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우크라이나군에 복무하기로 결심했다. 오데사 지상군사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1997년에 군에 입대해 빠르게 진급했다. 이후 2017년 지상군 서부작전사령부 제1부사령관(소장)을 맡았으며, 2018년 합동작전참모장과 2019년 북부작전사령관을 거쳐 지난해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아직 오십도 되지 않은 그가 우크라이나군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건 군의 현대화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서구식 군 현대화에 나선 배경엔 크림반도 사태가 있다.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친러 반군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주적이라고 확실히 인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러시아와 전면전을 준비했다. 그는 지난 2020년 우크라이나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나에게 전쟁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돈바스 전쟁 첫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군인으로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철의 장군' 별명 얻고 차기 대선 주자 꼽혀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왼쪽)이 지난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 총사령관(왼쪽)이 지난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홈페이지 캡처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전쟁 발발 이후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과 통화한 내용이나 전쟁 상황 등을 페이스북에 가끔 알릴 뿐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그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그를 '부서지지 않는 철의 장군'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도 꼽힌다. 우크라이나 매체 우크라인스카 프라브다는 지난달 21일 "최근 실시한 비공개 여론조사에서 지금 당장 대선을 치른다면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1위가 될 거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전했다.

3월 말 우크라이나 일부 정치인들이 "몇몇 지역을 너무 쉽게 내줬다"고 비난하자 잘루즈니 총사령관이 호통을 친 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우리 병사들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센 적을 상대로, 그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피해를 줬다. 우크라이나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다. 지금 최전방에 있는 건 당신이 아니다. 후방에서 그런 평가로 우리 병사들을 모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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