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포장 박탈 … 책임 물어야" 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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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정부는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현 조달청장) 등 3명에게 황조근정훈장, 이승우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장(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등 4명에게 근정포장을 수여했다. 또 공무원 18명이 대통령 표창을, 5명은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노무현 정권 부동산 정책의 핵심인 8.31 부동산 정책(2005년 8월 31일 발표) 수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김용민 세제실장과 전군표 국세청 차장 등 수훈자 7명 중 4명은 올해 승진까지 했다.

정부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투기는 없다"(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며 호언장담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혹했다. 결과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훈장을 받은 공무원들도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지금도 부동산 정책에 직.간접으로 간여하는 요직에 있다.

◆ 자화자찬 포상=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7월 "헌법만큼 고치기 어려운 제도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 직후 나온 정책이 8.31 부동산 정책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종합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8.31 대책의 요지는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금액 인하▶모든 부동산에 대한 실거래가 과세▶2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이다. 한마디로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 폭탄을 투하하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난 지금, 당시 훈.포장을 받은 공무원들은 요즘 시장 상황에 대해 하나같이 언급을 꺼렸다.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던 전군표 국세청장은 현 상황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 공보관을 통해 내놓았다.

같은 훈장을 받은 김용민 조달청장은 "현재 실무라인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세금대책 중심의 8.31 대책 수립 당시 재경부에서 세제를 총괄하던 위치에 있었다.

이승우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실무자들이야 뭐 할 말이 있겠느냐"고 얼버무렸다.

근정포장을 받은 이 비서관은 당시 재경부에서 실무를 총괄했었다. 정책 조정과 홍보업무를 총괄한 공로로 근정포장을 받은 방선규 국정홍보처 홍보협력단장은 "실무는 재경부에서 했고 홍보 협조를 했을 뿐인데 평가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는 그동안 국정브리핑을 통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적이라는 글을 계속 발표해왔다. 한마디로 당시 정책 입안에 적극적으로 관계했던 사람들조차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형국이다.

◆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훈.포장 수훈자들 가운데는 지켜봐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당시 국무조정실에 근무하며 당정협의 실무 등을 총괄했던 양준승 건교부 과장은 "8.31 대책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중장기적 효과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도와 공급.수요 측면까지 모두 고려한 대책을 내놨지만 시간이 좀 걸리다 보니 체감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영 지방혁신인력개발원 기획부장(당시 행자부 지방세제국장)은 "역대 모든 정권이 부동산 정책에 힘을 쏟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동산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권도엽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도 평소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성패 여부를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훈.포장을 나눠줄 때도 "정책이 성공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상훈법상 근정훈장과 포장은 직무에서 공적과 국리민복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도록 정해져 있다.

이에 대해 경실련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근거 없이 준 훈.포장을 박탈해야 한다"며 "오히려 부동산 정책 전반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현철 기자

*** 바로잡습니다

14일자 3면 '8.31 부동산 대책으로 포상 받은 공무원들 지금은…' 기사 중 "전군표 국세청장은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 공보관을 통해 내놓았다"는 부분은 청장 자신이 아닌 공보관이 "노 코멘트(No Comment)"라고 한 것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 또 "당시 실무라인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김용민 조달청장의 답변은 "(현재) 실무라인에 있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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