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고 헛것 같고…촉각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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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호 21면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수시마 수브라마니안 지음
조은영 옮김
동아시아

“촉각은 우리 내면의 언어”라는 감각적인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이 책의 영문 원제는, 의외로 건조하게도 『어떻게 느끼는가: 터치의 과학과 의미』이다.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제목이다.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이라는 번역서의 제목은 잘 알려진 문학평론가의 글에서 가져왔는데, 더없이 ‘따뜻하게’ 이 책을 감싸는 표현이다.

‘차갑고’ ‘따뜻한’ 그 모든 감각들은 ‘촉각’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원저와 번역서의 제목은 둘 다 걸맞다. 이 책은 과학에서 문학, 그리고 첨단 테크놀로지에서 인류학까지 넘나들며 때론 차갑게, 때론 따뜻하게 촉각의 비밀을 ‘건드린다’.

촉각은 평생 차단되는 일이 없는 감각에 속한다.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아 시각과 청각을 차단해 본 경험은 있어도 ‘촉각’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마비’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과도 다르다. 몸의 거동은 가능하지만 ‘촉각’만이 상실되는 상황이 과연 존재할까. 그건 도대체 어떤 상황일까.

저자는 매우 드문 사례로 피부에 가해지는 압력·땅김·진동 등의 감각이 후천적으로 상실된 환자를 언급한다. 통증을 느끼지 않는 ‘수퍼 히어로’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촉각을 잃으면 움직임도 함께 잃는다. 소파에 걸터앉는 간단한 동작조차도 불가능하다. 환자는 오로지 ‘시각’에 의존하여 자신의 팔과 다리를 로봇처럼 조종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또 유명한 실험으로 ‘고무손 착각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피험자의 한쪽 손을 안 보이게 가리고, 그 자리에 고무로 만든 가짜 손을 보여준다. 그리고 피험자의 보이지 않는 실제 손과 보이는 고무손을 동시에 실험자가 깃털로 쓰다듬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피험자는 고무손을 자기 몸의 일부로 느끼는 착각에 빠진다. 이 착각은 대단해서, 실험자가 깃털 대신 망치로 고무손을 내려치려고 하면 피험자는 저도 모르게 감춰진 실제 손을 움츠릴 정도다. 관객을 웃길 마술쇼에나 나올 법한 트릭 같지만, 시각과 촉각이 교차하는 이 ‘착각’ 속에서 가상현실(VR)이 실현된다.

책을 읽다 보면 의류·식품·IT기기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감각의 과학화·상품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자못 씁쓸해지는 독자라도, 어느새 책장을 넘기는 자신의 손길, 종이책의 기분 좋은 까끌까끌한 감촉, 끝까지 읽어갈수록 펼친 책의 좌우 두께감(!)이 달라지는 느낌에 새삼 놀랄 것 같다. 더구나, 코로나 ‘언택트 시대’에 ‘촉각’의 소중함을 절감하면서 쓰고 옮긴 책이다. 접촉이 금지된 시대, 촉각이 그리웠던 시기였다. 때마침 한국에서도 ‘거리두기’를 끝낸다.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서, 다시 껴안아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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