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가 읽기 배운 건 ‘최근’의 진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91호 25면

읽지 못하는 사람들

읽지 못하는 사람들

읽지 못하는 사람들
매슈 루버리 지음
장혜인 옮김
더퀘스트

르네상스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공통점은 난독증(dyslexia·難讀症)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 dys-(어려움)와 lexis(언어)에서 유래한 난독증은 인지와 해독에 문제가 있어서 능숙하게 읽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다. 그런데 다빈치, 벨, 에디슨은 난독증이 ‘있음에도’가 아니라 난독증 ‘덕분에’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천재들이다.

오늘날에는 난독증을 읽기결함이 아니라 인지차이로 이해한다. 난독증이 있긴 하지만 패턴 인식, 공간 추론, 직관적인 문제 해결, 구조를 보는 능력 등 창의성 측면에서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사례가 더러 있다.

난독증 없이 뇌와 몸이 조화롭게 작동하며 책 내용을 이해하는 능숙한 독자들이라고 꼭 책을 많이, 그리고 잘 읽는 것도 아니다. 단어 인식과 이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를 가진 ‘읽기’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읽는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지은이 매슈 루버리(퀸메리런던대 교수)는 읽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며 문해력을 갖추는 과정은 사람마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진화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읽기는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능력이다. 인간의 뇌는 읽기를 위해 설계되거나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읽기에는 따로 규칙이 없고 따라서 예외도 많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독서하기 힘든 환경에 처한, 평범하지 않은 독자들의 입장에서 본 읽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은 난독증 외에도 과독증(hyperlexia·過讀症), 실독증(alexia·失讀症), 공감각, 환각, 치매 등의 읽기장벽 때문에 활자를 접할 때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의 실태를 소개한다. 비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읽기방식을 통해 읽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채로운 현상임을 보여 주려 한다.

과독증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관련된 증상으로 말을 익히기도 전에 단어를 해독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책을 통째로 외우는 어린이가 보이는 조숙한 능력이다. TV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서번트증후군을 안고 살던 킴 픽은 뛰어난 기억력으로 컴퓨터라는 별명을 가졌던 천재였다. 픽은 왼쪽 눈으로는 왼쪽 페이지를, 오른쪽 눈으로는 오른쪽 페이지를 동시에 읽었다. 세상에서 책을 가장 빨리 읽는 ‘스캐너’ 픽은 자폐성서번트증후군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 ‘레인 맨’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실독증은 오랫동안 후천적 문맹, 단어맹으로 불려왔다. 은퇴한 교수로 독서광이었던 샘 마틴은 뇌출혈 때문에 갑자기 글을 읽을 수 없게 됐다. 다행히 재활치료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힘겨운 노력 끝에 마틴은 실독증에서 벗어나 읽기능력을 서서히 회복했다고 한다.

글을 읽으며 촉각, 청각, 후각, 미각을 동시에 느끼는 공감각 소유자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감옥’이라는 단어를 보면 ‘베이컨 맛’을 느낀다고 한다. 책을 읽을 때 종교적 환상부터 현실과 단절되는 조현병적 환각까지 다양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기억을 잃어 가는 치매 환자는 읽기를 어려워한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지은이 루버리는 읽기장애라는 말 대신 읽기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전형적인 독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버리는 저마다 독특한 방법으로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정상이든 아니든, 전형이든 비전형이든 읽기는 여전히 인류 문명을 밝혀 온 등불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은 읽기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고 읽기의 다양성을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역작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