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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우크라 무기 지원 다음날, 푸틴 '핵탑재 ICBM' 보란듯 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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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간)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8 ‘사르맛’의 첫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미국 정부는 “사전에 통지받았고, 위협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선 이런 러시아의 행보가 핵 위협을 증강시키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ICBM 시험발사 성공 소식을 알리며 “이 독창적인 무기는 외부 위협에 맞서 러시아의 안보를 확실하게 보장하고, 러시아를 위협하려는 적들을 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푸틴 대통령은 “사르맛 미사일은 러시아 기술자들에 의해 순수 국내 부품으로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오후 3시 12분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주(州) 플레세츠크에서 발사된 사르맛 미사일이 극동 지역 캄차카반도의 목표에 명중했다”며 “시험 과정을 통해 사르맛 미사일은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르맛 미사일은 지난 2009년 개발을 시작한 격납고 발사형 3단 액체연료 로켓형 ICBM으로, 최대 사거리는 1만8000㎞다. 메가톤(TNT)급 핵탄두를 10개 이상 탑재할 수 있어 위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2000배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강한 위력으로 서방에서 ‘사탄 2’로도 불리며, 전문가들은 이 미사일이 한 번에 15개 도시나 프랑스‧미국 텍사스주 정도의 면적을 파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브젝트 4202’로 불리는 신형 극초음속(HGV‧음속의 5배 이상) 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각)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맛’을 첫 시험발사했다. [타스=연합뉴스]

러시아가 20일(현지시각)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28 ‘사르맛’을 첫 시험발사했다. [타스=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무기의 위력보단 시험발사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미 미국과 유럽을 타격할 수 있는 다량의 ICBM을 갖추고 있는 데다, 사르맛 미사일의 개발 사실도 수년째 서방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대(對) 화력전을 대비해 서방 정상들과 포병 무기 등을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이다. 또 크렘린 측이 “우크라이나에 명확한 제안이 담긴 평화 협상안을 전달했고 공은 우크라이나 측에 넘어갔다”고 밝힌 날이다. 러시아가 휴전 협상을 말하면서 '무력 과시'를 병행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드미트리 로고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시험발사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향한 선물”이라고 칭했다고 이날 WP는 전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19일 나토 가입 움직임을 보이는 핀란드 등에도 북방함대 강화 방침을 밝히며 경고에 나섰다. 이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방함대는 유럽의 정치·군사 상황이 극적으로 악화해 긴장과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올해 500대 이상의 고성능 무기 체계가 (북방함대에) 배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5차 평화협상장에서 마주한 러시아-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모습. [아나돌루=연합뉴스]

지난달 5차 평화협상장에서 마주한 러시아-우크라이나 대표단의 모습. [아나돌루=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러시아의 ICBM 시험발사를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날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시험발사 전 미국에 통보해왔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적 태도에 집중하고 있지만, 통상적인 시험이 미국이나 동맹들에 위협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발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무기통제 및 비확산센터의 존 에라스 선임정책국장은 20일 WP와 인터뷰에서 “무기 자체보다 푸틴의 위협이 더 우려스럽다. 러시아가 이를(핵 위협을)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푸틴이 화학무기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더 절박해질 경우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방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AP=뉴시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방부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AP=뉴시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부연구위원은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발사한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였다면, 이번 사르맛은 전략 핵무기라는 점에서 나토, 특히 미국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연구위원도 “러시아가 서방에 경고를 보낼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며 “핵전력이 충분히 현대화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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