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의 본성 분석한 문화연구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바야흐로 '쿨'하길 권하는 시대다.

쿨하다는 것은 연인과 이별하는 즉시 전화번호를 가차 없이 지우는 것이다. 쿨한 사람은 덧없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못 믿을 직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냉정과 열정 사이 어딘가에서 집단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쿨은 끈적끈적하거나 구질구질한 것에 질색하는 청년문화의 주류 코드다. 무엇보다 쿨은 속물티 안 내면서 세련미를 소화하는 소비의 미덕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쿨은 '열정과 감정에 영향 받지 않으며 흥분하지 않고 심사숙고하고 조용한' 상태를 뜻한다. 미국 대학생 90% 이상이 쓰는 속어로서의 쿨은 '멋진, 근사한, 좋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때 쿨은 선량한 시민의식에 비추어 '좋음'이 아니다. 신간에 따르면 쿨은 오히려 '공식적 가치에 진지하게 맞서는 대안적 가치의 집합개념'에 가깝다.

영국 하위문화 연구자인 딕 파운틴과 데이비드 로빈슨은 종잡을 수 없는 다중성으로서의 쿨을 정의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했다. 저자에 따르면 쿨은 리바이스 마케팅 담당자를 좌절시키는 속도감 있는 유행인 동시에, 햄릿과 피어싱한 소년을 한데 묶는 세대 초월적인 감수성이다.

'세속적인 반역의 태도'라 이름할 수 있을 쿨을 규명하기 위해 신간은 1920년대 흑인 음악부터 하드보일드.펑크.힙합에 이르는 20세기 청년문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그 속엔 세 편의 영화를 남기고 자동차 사고로 요절한 '쿨의 원조' 제임스 딘이 있고, 대중적 냉소주의를 예술의 영역에서 완성한 앤디 워홀식 모더니즘이 있다.

저자는 쿨을 구성하는 세 가지 태도를 나르시시즘.역설적 초연함.쾌락주의라고 본다. 프로테스탄트적인 노동 윤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쿨은 전통 좌파와 거리를 둔다.

가족이나 전통적 신념체계를 우습게 본다는 점에서 쿨의 승리는 우파에게도 찜찜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반역자이다. 누구도 대중 속의 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진단이야말로 '경쟁적 소비경험'으로 전락한 쿨의 역설을 보여준다.

신간이 쿨을 분석하는 태도는 기왕의 하위문화 연구와 다르지 않다. 즉 로큰롤이나 196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처럼 소비 자본주의가 배태한 행동양식으로 정의하되 그 안에서 저항과 일탈을 읽어내는 식이다. 쿨의 반역적 본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그 기원을 고대 아프리카 사회의 삶의 양식인 '이투투'에까지 밀고 가지만 충분한 사료적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아 설득력은 떨어진다.

사회심리학.정신분석학.인류학.텍스트 비평을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의 매력은 높이 살 만하나 쿨의 외연을 지나치게 확대한 결과 핵심을 잃고 파노라마식 하위문화 개괄에 그친 점이 아쉽다.

강혜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