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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나토 가입 땐 러 국경 부담 2배…우크라 침공이 부른 역설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침공 50일을 넘긴 러시아가 중립국인 스웨덴·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로 화력을 집결 중인 러시아는 두 나라를 향해 “유럽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엄포를 놨지만, 외신들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의 침공으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연합뉴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해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의 나토 가입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토의 동진(東進)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되짚어보면, 두 나라의 나토 합류는 러시아에겐 ‘재앙’에 가까운 소식”이라고 전했다.

현재 러시아의 서쪽 국경은 노르웨이, 핀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접하고 있다. 이중 노르웨이와 발트 3국은 이미 나토 가입국이고, 벨라루스는 친(親)러 국가다. 중립국인 핀란드,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만 아직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나토 동맹국과 접한 러시아의 국경 길이가 두 배 이상 늘어난다. 러시아가 “정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보유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강경 대처하는 이유다.

스웨덴·핀란드까지...나토의 동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스웨덴·핀란드까지...나토의 동진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크라 전쟁 주범이 나토 동진?"

이번 전쟁의 ‘주범’을 찾는 논쟁에서 ‘나토의 동진’은 뜨거운 감자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의 정당성을 역설하면서 나토의 동진을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나토의 팽창이 러시아에 안보 위협을 가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했다면서, 전쟁의 ‘근본 원인’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가 아닌, 미국과 서방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나토의 팽창에 대한 우려는 러시아뿐 아니라 서방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앞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달 19일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푸틴 한 사람에게 있다는 얘기는 틀렸다”면서 “서방, 특히 미국이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부인 그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때도 동일한 견해를 내세운 바 있다.

그는 2008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부쿠레슈티 선언이 우크라이나 비극의 시작이라고 봤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러시아어 그루지야)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 붕괴, 2021년 흑해에서 미국·우크라이나의 합동 기동훈련 등이 이어지자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푸틴이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 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 연합뉴스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교수도 지난 11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미국 역시 다른 강대국을 자국 국경에서 밀어내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면서 “나토 확장에 대한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서방이 무시한 것이 실수”라며 미어샤이머 교수의 논지에 동조했다. 쿱찬 교수는 “나토의 문호 개방 정책은 ‘예비 회원’들을 자극해 지나치게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다”면서 “고귀한 이상(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확장)도 지정학적 위기와 같은 전략적 현실을 피해갈 순 없다”고 지적했다.

개전 이전인 지난 1월엔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에 마이클 키미지 미국 가톨릭대 역사학과 교수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러시아)가 옆에 있는데,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전략적 광기’가 될 것”이라며 “나토의 문을 닫아야 할 때”라는 주장을 펼쳤다. 나토가 “추가 확장이 끝났다”고 분명히 선을 그어야만, 유럽 전역에서 나토 가입을 둘러싼 갈등과 전쟁의 불씨가 사라질 거라는 경고였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 일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나토는 더 많은 동맹국 받아야" 반박도

‘현실주의’로 분류되는 학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주류 학계나 정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진 않는다.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인 아이보 달더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9일 이코노미스트에 “미어샤이머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면서 “마리우폴의 무자비한 폭격을 보고도 나토를 비난하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중부와 동유럽 국가들에게 나토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원동력이 됐고 실제로 울타리 안에 들어온 국가들은 안보를 보장받고 경제 번영을 누렸다”고 짚었다. 이어 “나토의 실수는 지나치게 확장한 게 아니라, 충분히 확장하지 못한 데 있다”면서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었다면, 그래서 미군과 나토군이 우크라이나 지상에 배치돼 있었다면, 과연 푸틴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로버트 카간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포린어페어스 최신호(5~6월호)에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이 비난받을 게 있다면, 동유럽에서 미국과 서방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이 상황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가 전복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예측하지 못한 것뿐”이라며 미국을 주범으로 지적한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을 받아쳤다. 그는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 가입을 열망한 것은 미국의 정책에 따른 게 아니라, 그들의 자발적 움직임”이라며 “서방으로 편입되는 것만이 안전하고 민주적이며 부유한 국가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느낀 동유럽의 움직임은, 러시아는 물론 미국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나토 가입 이후 폴란드·체코의 GDP 상승.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나토 가입 이후 폴란드·체코의 GDP 상승.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스웨덴·핀란드, 나토 가입…군사 긴장 강화 우려도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움직임은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보다 달더 전 대사의 분석에 힘을 싣는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전 핀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본 핀란드 국민들은, 푸틴 체제 하에서는 러시아와 제대로 된 관계설정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2차 세계대전 때처럼, 전쟁 때 혼자 남겨져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핀란드경제정책포럼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핀란드 국민의 60%가 나토 가입에 찬성했다. 1998년 조사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스웨덴의 제2야당이자 나토 가입에 반대해 온 민주당 지미 아케손 대표는 “나토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목격하고, 나토 가입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이 러시아를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현실적으로'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 매체 메트로는 핀란드가 나토 가입 검토를 시작한 뒤, 러시아가 해안 방어 미사일 체계 등 군사장비를 핀란드 국경에 비치한 모습이 포착됐다고 12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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