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의미의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처리가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13일에도 침묵을 이어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까지는 국회의 시간이자 입법의 시간”이라며 “현재로선 국회 논의를 지켜본다는 것 외에 별도의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공포되려면 국무회의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국회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무회의 상정 시점이 온다면 문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민주당이 당론에 따라 4월 임시국회 내에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더라도, 문 대통령에게는 해당 법률안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
헌법 53조에는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경우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거나, 같은 기간 내에 국회에 재논의를 요구할 수 있는 ‘재의 요구권’이 규정돼 있다.
검찰과 야당은 이를 근거로 문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날 오전 “법안에 대한 공포와 재의결 요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 등 모든 절차와 방안을 강구해 호소하고 요청하겠다”며 직접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뜻을 밝힌데 이어, 오후엔 별도 간담회를 통해 “이날 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문 대통령이 결자해지하는 것이야말로 임기를 마무리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마지막 소임”이라며 “민주당이 무리하게 검수완박법을 처리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어 “임기를 한 달도 안 남긴 채 또 다시 검찰개혁을 꺼내든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서 저지른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 의심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년간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과 상시 청문회를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두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그대로 법률로 확정된다.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172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한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66건의 법안 중엔 재의결을 통해 통과된 사례가 없다.
만약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뒤, 민주당이 이에 반발해 국회 재의결로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거부한 첫 사례가 된다. 문 대통령의 거부권 자체는 물론, 거부권 행사 이후 발생할 민주당의 회군 또는 독자노선 선언 등 모든 경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여권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문 대통령이 민주당이 강행처리해 통과시킨 법안을 그대로 국무회의에서 공포할 경우 문 대통령은 침묵을 통해 여당의 강행처리에 동조했다는 평가를 받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문 대통령은 임기말 극심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는 부담을 안고 정권을 윤석열 당선인에게 넘겨주게 된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든 하지 않든 문 대통령은 모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야당의 반발과 집단항명에 가까운 검찰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아무런 입장을 낼 수 없는 배경은 그만큼 문 대통령의 고민이 깊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