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고딩엄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고딩엄빠'는 고등학생인 엄마 아빠의 육아 현실을 보여주는 종합편성채널 MBN의 관찰 예능이다. 10대의 임신을 사회문제로 다룰 때 흔히 보이던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는 없다. 어린 엄마들은 교복을 입고 스튜디오에 나와 아이를 낳게 된 사연, 가족사 등을 털어놓는다. 만삭의 아내를 살뜰히 살피는 어린 아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연 많은 어린 엄마, 양가의 지지를 받는 청소년 부부 등 다양한 사례가 나온다.

 이런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지만 통계상으론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산모가 첫 아이를 낳는 중위 연령은 32.3세(2020년 기준)다. OECD 국가 중 가장 나이가 많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3년엔 26.2세로, 관련 통계가 있던 14개국 중 중간(8위)이었으나 2009년부터 고연령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혼외 출산 비율도 극단적인 꼴찌다. 2020년 혼외 출산으로 태어난 아기가 6876명(2.5%)인데, 해당 통계가 처음 나온 1981년의 9844명(1.1%)에 비해 그리 달라진 게 없다. 참고로 OECD 평균 혼외출생률은 41%다.

 즉, 결혼은 경제적으로 기반을 다질 나이에 하고 아이는 갖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는 게 한국 사회의 거대한 흐름이다. 보편적인 '혼인'의 틀 밖에서 아이를 낳으면 곱지 않게 보는 시선까지 감내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10대가 엄마 혹은 아빠가 된다는 건 ‘문제아’로 낙인 찍히기 쉬운 무모한 도전이다. 방송 게시판에는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애쓰는 어린 엄마와 아빠들을 응원하는 목소리와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며 오른다. 자칫하면 방송 출연이 이들에게 또 다른 낙인찍기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청소년 부모 양육 및 자립 지원 강화 방안'에 따르면 청소년 산모는 본인과 아이 의료비를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산모도 의료비 바우처 100만원을 지원받으므로 그보다 20% 더 얹어준 정도다. 임대주택 지원 대상도 245세대에 그쳐 모수(만24세 미만, 전국 8000여 가구)에 비해 미미하다. 모든 게 준비된 완벽한 부모만 아이를 낳고 기르라는 법은 없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어린 부모를 좀 더 따뜻하게 돌봐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