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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반부패수사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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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영익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영익 정치에디터

한영익 정치에디터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헤지펀드 창업자 바비 액슬로드와 이를 수사하는 뉴욕 남부지검장 척 로즈의 대결을 그린 화이트칼라 범죄물이다. 2013년 헤지펀드 운용사 SAC 캐피털의 창업자 스티브 코헨을 내부자거래 혐의로 수사·기소했던 프릿 바라라 전 뉴욕 남부지검장이 모티브가 됐다. 바라라 전 지검장은 2012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월스트리트의 부패를 파괴하는 남자’라고 표제를 달 정도로 강골이었다.

한국에선 대형 경제범죄 수사를 검찰 반부패수사부(옛 특수부)가 담당해왔다. 검찰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는 ‘검수완박’ 법안이 겨냥하는 것도 사실상 반부패수사부다. ‘조국 사태’(공직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경제) ‘세월호 침몰’(대형참사) 수사 등을 반부패수사부가 담당했다.

반부패수사부의 외형은 지속해서 축소돼왔다. 수사권 남용, 표적 사정 시비 등을 불러일으키며 ‘정치 검찰’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잦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반부패수사의 정점에 있던 대검 중수부를 폐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9년 10월 검찰이 서울중앙지검 등 3곳을 제외한 모든 검찰청의 특수부를 폐지하고, 명칭을 반부패수사부로 바꾸는 자체 개혁안을 내놨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위해 검찰과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찰 반부패수사부의 전성기는 문재인 정부 초기였다. 2017년 25명에 불과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2018년 43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을 데리고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한 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여권과 검찰 특수부의 밀월 관계를 끝장낸 건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였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의 근거로 ‘수사·기소 분리가 글로벌 스탠더드’란 점을 제시하고 있다. 수사·기소권을 다 가진 검찰을 견제할 수 없으니, 수사권이라도 박탈해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단 논리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해 탄생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수사·기소권을 다 가진 데다, 검·경이 수사 중인 사건을 강제이첩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한 설명 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걸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