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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선관위 "우린 헌법기관"...'소쿠리 투표' 감사 정면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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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진자 사전투표 관련 대선 부실 관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계획에  “헌법기관의 직무수행 독립성과 중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정면으로 반발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6월 지방 선거 이후 선관위의 선거관리 시스템 전반에 대한 보완 및 개선 요인을 분석하겠다”는 직무감찰 계획을 보고했다.

선관위는 감사원의 이같은 업무보고 관련 입장을 묻는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실의 서면 질의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감찰을 하는 건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헌법기관의 직무수행 독립성과 중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 업무 관련 직무감찰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 관련 업무 감찰은 내부 감사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사원 측은 “대선 관리 부실 의혹은 중대한 사안일뿐 아니라, 감사원법상 직무감찰 배제 기관은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뿐”이라며 선관위의 선거 업무 관련 감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수위 업무보고를 둘러싸고 선관위와 감사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용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가 지난달 27일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 계획을 언론에 밝히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이용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가 지난달 27일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 계획을 언론에 밝히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감사원의 선관위 감사 계획은 지난달 27일 인수위 정무사법행정 분과 간사를 맡은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의 긴급 브리핑을 통해 알려졌다. 이 의원은 이날 선관위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인수위와의 간담회를 거부한 데 유감을 표명한 뒤 감사원이 선관위 감사 계획을 보고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철통 보안’을 강조하는 인수위가 비공개 업무보고 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선관위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인수위 관계자는 “간담회에 이어 감찰도 거부하겠다는 선관위의 태도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선관위는 지난 10년만 따져봐도 감사원의 감사를 네 차례나 받았다. 무소불위의 기관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런 인수위 측 주장에 “감사원으로부터 직무 감찰이 아닌 일반 행정과 회계 감사를 받아온 것”이라며 “선거 관리라는 선관위의 본질적 업무에 대한 감찰은 전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법에 따라 세금과 관련한 회계와 재무 검사는 선관위뿐 아니라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된 대법원 행정처와 헌법재판소 사무처도 받고 있다. 감사원의 과거 선관위 감사는 이와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입장과 달리 선관위 역시 직무감찰의 대상이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은 선관위의 입장과 달리 선관위 역시 직무감찰의 대상이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와 감사원, 그리고 인수위가 선관위의 ‘감찰 범위’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건 직무감찰에 대한 현행 감사원법의 모호한 조항의 영향이 크다. 감사원법 24조에 따르면 직무 감찰의 범위는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된 공무원의 직무’로 나와 있다. 그 3항엔 직무감찰의 제외 대상으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이 명시돼있다. 헌법 제97조에서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행정기관 및 그 공무원의 직무’라 한정해 헌법기관은 예외를 둔 것인데, 같은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빠져있다.

이 점을 두고 감사원은 감사원법을, 선관위는 헌법을 들며 감찰 범위를 다르게 해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국회에선 선관위를 직무 감찰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감사원법 개정안 논의가 있었지만, 본회의 문턱까지 오른 적은 없었다. 지방 선거 이후 감사원이 실제로 대선 관련 감사에 나설 경우 두 기관 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대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달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연합뉴스]

대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달 5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전투표소 측이 준비한 확진자·격리자용 투표용지 종이박스. [연합뉴스]

선관위의 감사원 감찰 거부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해줄 필요가 있지만 적절한 외부 감시 체계 마련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쿠리 투표’라는 전 세계적인 비웃음을 산 대선 부실 관리를 선관위에 자체적으로 맡겨선 해결할 수 없단 것이다. 또한 정치적 논란이 반복되는 현행 선관위원 임명 제도도 손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가 자체 혁신 TF를 구성했다지만 내부 감찰은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며 “대선 부실 관리는 감사보다는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선관위원 과반을 임명하는 현행 제도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지난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선관위는 준비 부족과 현장 대응 소홀로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다”며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선관위에 대한 감사 권한 및 방식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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