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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18) 공화란추(空華亂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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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공화란추(空華亂墜)
한용운(1879∼1944)

따슨빛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어지럽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어 꽃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오
-민성(1948.10)

만해(萬海)의 님은 ‘조국(祖國)’

시집 『님의 침묵』 한 권으로 불멸의 시인이 된 만해 한용운(韓龍雲)은 시조와 한시도 많이 썼다. 봄철 낮, 허공에 어지러이 흩날려 떨어지는 화려한 꽃을 보고 지은 이 시조는 승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유마경』은 대승(大乘)의 깊은 뜻에 대한 유마거사와 문수(文殊)보살 간의 문답을 기록한 불경인데, 자연의 흐름이 문자의 세계 위에 있음을 암시한다.

만해의 ‘님’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한 편의 시조에 그 답이 있다.

이순신 사공 삼고 을지문덕 마부 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북마(南船北馬) 하여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뿐인가 하노라
-무제(無題)

일제강점기, 절망적 시대에 님을 찾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인(武人) 이순신 장군을 사공으로 삼고 을지문덕을 마부로 삼아, 마귀를 죽이는 칼을 높이 들고 남쪽으로는 배로, 북쪽으로는 말을 달려 평정하고자 한다. 그의 님은 ‘조국(祖國)’이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