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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은 시아버지에게 손 벌렸다…美영부인 의상 흑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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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이 지난해 7월 조지아주 사바나에 도착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입은 오스카 드라렌타의 꽃무늬 드레스는 그 전달 보그 잡지 촬영 때 입은 옷이다. [AP=연합뉴스]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이 지난해 7월 조지아주 사바나에 도착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입은 오스카 드라렌타의 꽃무늬 드레스는 그 전달 보그 잡지 촬영 때 입은 옷이다. [AP=연합뉴스]

미국 퍼스트레이디들에게도 옷 입기는 어려운 과제다. 대통령 부인의 패션 취향은 대중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최고 지도층의 사적 영역이기에 늘 관심과 비판 대상이 된다.

美 대통령 부인, 의상비 국고 지원 없어 #기증받은 옷은 기록물보관소·박물관으로 #바이든 여사, 같은 옷 입고 또 입어 해결 #링컨 여사, 옷값 갚으려 거름 내다 팔 궁리

하지만 대부분 대통령 부인이 겪는, 보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자금 문제일 수 있다. 미국 대통령 부인의 위상에 걸맞은 차림새를 요구하면서도 이에 대한 국가 예산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AP통신과 패션잡지 보그,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미국은 대통령 본인은 물론 배우자에게도 의상 관련 예산을 책정하지 않는다. 즉, 대통령 부부가 공무 중에 입는 옷에도 세금을 쓸 수 없다. 대통령 취임식 같은 국가 대사와 정상회담·국제회의 등 중요 외교 행사에 참석하는 경우도 대부분은 예외가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2002년 유엔 행사에 참석한 모습. 부시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갖출 것으로 기대받는 디자이너 의상 숫자를 보고 놀랐다고 회고했다. [AFP=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 여사가 2002년 유엔 행사에 참석한 모습. 부시 여사는 퍼스트레이디가 갖출 것으로 기대받는 디자이너 의상 숫자를 보고 놀랐다고 회고했다. [AFP=연합뉴스]

대통령 부인은 월급도 받지 않으면서 미국의 국격에 어울리게 잘 차려입을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는 2010년 펴낸 회고록 『진심에서 우러난(Spoken from the Heart)』에서 "내가 사야 할 것으로 기대받는 고급 디자이너 의상 숫자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라면 이 정도급 디자이너 의상은 입어야 한다는 주변 기대치를 접하고 부담을 느꼈다는 취지다.

질 바이든, 같은 옷 입고 또 입고

의상을 마련하기 위해 퍼스트레이디들은 각자 방식대로 노력해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비싸지 않은 옷으로 멋 내기, 옷 돌려입기, 신진 디자이너 작품을 애용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이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에 미국 사절단을 이끌고 도착했다. 빨간색 드레스는 미국 디자이너 오스카 드라렌타 제품. [AP=연합뉴스]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이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에 미국 사절단을 이끌고 도착했다. 빨간색 드레스는 미국 디자이너 오스카 드라렌타 제품. [AP=연합뉴스]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7월 미국 사절단을 이끌고 도쿄올림픽에 참석했을 때 미국 패션 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스의 빨간색 원피스를 입었다.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6월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과 플로리다주 백신 접종소를 방문할 때 같은 드레스를 입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해 6월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과 플로리다주 백신 접종소를 방문할 때 같은 드레스를 입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달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과 함께 플로리다주의 백신 접종센터를 방문할 때 입은 그 옷이었다. 마스크와 팔찌 등 액세서리를 바꿔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은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에 참석할 때 미국 디자이너 브랜든 맥스웰의 드레스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은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에 참석할 때 미국 디자이너 브랜든 맥스웰의 드레스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도쿄올림픽 때 입은 흰 바탕에 검정 도트 무늬 원피스는 미국 신진 디자이너 브랜던 맥스웰의 제품이다. 바이든 여사는 같은 드레스를 전해(2020년) 6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도 입었다.

2021년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질 바이든 여사는 브랜던 맥스웰이 디자인한 원피스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2021년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질 바이든 여사는 브랜던 맥스웰이 디자인한 원피스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이 원피스 위에 프랑스 기성복 브랜드인 자딕앤볼테르의 검정 재킷을 걸쳐 화제가 됐다. 재킷 뒷면에 '러브(LOVE)'라고 큼직하게 쓴 반짝이 글씨가 세계에 사랑과 화합 메시지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8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나는 상관 안 해, 너는?"이라고 적힌 재킷을 입었다. 2021년 6월 질 바이든 여사는 "러브(LOVE)"라고 쓴 재킷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2018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나는 상관 안 해, 너는?"이라고 적힌 재킷을 입었다. 2021년 6월 질 바이든 여사는 "러브(LOVE)"라고 쓴 재킷을 입었다. [AFP=연합뉴스]

'나는 상관 안 해, 너는(I don't care, do you)?'라고 쓴 자라 재킷을 입고 멕시코 국경 도시에 이민자 아이들을 만나러 간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딕앤볼테르는 한국 백화점에도 입점해있으며, 젊은 감성의 대중 브랜드다.

하지만 옷 돌려입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로라 부시 여사는 TV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지난번 인터뷰 때와 똑같은 정장을 입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부시 여사는 회고록에서 "(동행한) 대변인과 재빨리 상의를 바꿔 입어 옷이 많은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고 기억했다.

1961년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케네디 여사는 남편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의상 마련에 시아버지 도움을 받았다. [AP]

1961년 재클린 케네디 여사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케네디 여사는 남편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의상 마련에 시아버지 도움을 받았다. [AP]

남편 정치적 부담 덜려고 시아버지에게 손 벌리기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부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는 의상 마련이 남편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재키 룩'이란 패션 용어를 만들어내며 세계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케네디 대통령의 젊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한 케네디 여사의 패션은 미국 국고가 아닌, 시아버지 재력에 뿌리를 둔 셈이다.

국립 대통령 부인 기록물에 따르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부인 메리 토드 링컨 여사는 옷에 너무 많은 돈을 쓴 나머지 빚을 갚기 위해 백악관에서 사용하는 거름을 내다 팔려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고급 디자이너 드레스를 빌려 입고 반품하지 않거나 선물로 받았다고 신고했다는 얘기도 있다.

취임식 등 국가 행사는 기증받기도

대통령 취임식이나 취임 무도회 등 중요 국가 행사를 위해 입어야 하는 포멀한 드레스는 수천 달러에서 1만 달러(약 1200만원)를 훌쩍 넘는다. 퍼스트레이디가 스스로 장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금액이다.

이 경우는 퍼스트레이디가 '국가'를 대신해 디자이너로부터 의상을 기증받아 입을 수 있다. 다만, 행사가 끝난 뒤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국가기록물로 보존한다. 유명 박물관 등에 기증해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때 기증자가 디자이너인지, 퍼스트레이디인지 애매한 지점도 있다.

2009년,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 신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드레스를 연달아 입은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

2009년,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축하 무도회에서 신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드레스를 연달아 입은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남편의 첫 취임 무도회에 입은 대만계 미국인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드레스는 2010년 스미소니언박물관에 기증됐다. 기증 행사에서 오바마 여사는 "제이슨 우가 만들고 내가 기증한 드레스는 걸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박물관 측은 "퍼스트레이디를 위한 제이슨 우의 선물"이라고 명시했다. 제이슨 우가 기증자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영부인 의상의 재원과 소유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의 1995년 취임 무도회 드레스는 원가만 5만 달러(약 6100만원)에 달했다. 그중 대통령취임식위원회가 1만 달러(약 1220만원)를 지불하고, 나머지 비용은 디자이너 측에서 '흡수'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디자이너 쪽에서 영부인에게 가격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된다. 홍보 효과를 고려해 연예인에게 할인해 주듯, 대통령 부인도 제값 다 주고 사기보다는 할인 기회를 노린다고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부정부패·뇌물 가능성? '투명성'으로 방어 

대통령 부인이 고급 디자이너로부터 기부 또는 할인을 받으면 부정부패에 더 노출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천만 원어치 뇌물 공여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김영란법으로 이를 규제한다. 미국은 이 같은 한계를 '투명성'으로 방어한다.

퍼스트레이디가 특별한 자리에서 입는 옷은 대부분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공개한다. 기증자가 누구인지 국민에게 알린다. 해당 디자이너는 이를 자신의 홍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대통령 부인이 자사 브랜드를 입을 경우 발 빠르게 트위터로 홍보한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오스카 드라렌타는 지난해 3월 바이든 여사가 자사의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연설하는 사진을 공식 트위터에 올렸다.

#2021년 봄 컬렉션, #미국 퍼스트레이디 #국제여성의 날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같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자사 온라인 쇼핑몰 링크도 게재했다.

한국이 영부인 의상비를 외교 행사 부대 비용에서 쓰는 것을 허용하면서도 디자이너 이름이나 브랜드 등 출처를 공개하지 않는 '불투명'한 운영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세금을 쓰면서도 내역을 공개하지 않지만, 미국은 세금을 쓰지 않기 위해 세부 사항을 공개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미국도 의상비 논란…"오바마, 자기 옷값 낸다"

지난 233년간 대통령 46명을 배출하며 경험으로 단련된 미국에서도 퍼스트레이디 의상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된다.

미셸 오바마 여사의 대변인 조애나 로스홈은 2014년 CNBC에 출연해 "오바마 여사는 본인 옷값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며 화제를 몰고 다닌 오바마 여사의 옷값을 누가 지불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일자 직접 해명한 것이다.

로스홈 대변인은 "국빈 방문 같은 공적,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식 행사의 경우 영부인 옷은 디자이너가 선물로 주면 미국 정부를 대표해 받을 수 있다. 그런 뒤 국립 기록물 보관소에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멜라니아 트럼프, 부적절 옷차림으로 구설 

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의 아내였던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옷값을 누가 대느냐는 논란은 피했지만, 다른 일로 곤란을 겪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일부 유명 디자이너들이 트럼프 여사에게 옷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 여사가 입을 것이라고 알리지 않고 대리인이 구매했다고 한다. 트럼프 여사는 구찌, 샤넬, 보테가 베네타, 돌체앤가바나 등 유럽 명품 브랜드를 즐겨 입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2018년 아프리카 4개국 순방 때 식민지배 당시 행정관들을 연상시키는 흰색 모자와 셔츠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2018년 아프리카 4개국 순방 때 식민지배 당시 행정관들을 연상시키는 흰색 모자와 셔츠를 입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여사는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패션으로 구설에 휘말렸다. 2018년 아프리카 4개국 순방 길에 올랐을 때 과거 식민지배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착용해 논란을 빚었다.

19세기 유럽 탐험가나 식민 지배하는 행정관들이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쓴 둥근 모자인 '피스 헬멧(pith helmet)'을 쓰고 제복을 연상시키는 카키색 수트를 입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가 이런 차림을 선택한 것은 미국이 아프리카를 보는 시각과 정책에 오해를 줄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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