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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반가운 손님이 오면 권주가로 환대|권오성<한양대 음대교수>|민속음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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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국 내몽골 자치구 이극소맹 동승시의 오르도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몽골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6명의 아가씨들이 두 손에 흰 천을 가로질러 늘어뜨리고는 접시에 술잔을 받쳐들고 나와 높은 소리와 맑은 음색으로 권주가를 불렀다. 과연 노래의 나라 몽골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 술잔엔 맛좋은 술이 향기롭게 넘쳐흐르고 흰 천을 늘어뜨려 배례드리네 우리들 모두 함께 모여 기쁨 나누니 흰 천을 늘어뜨려 배례드리세.』
옛날부터 오르도스 고원지대에서는 명절날이나 방목을 하고 돌아온 후, 또는 멀리서 반가운 손님이 왔을 때 항상 관습적으로 이런 주가를 불러왔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노래를 서로의 의사나 감정을 나누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새·바람소리 모방>
음악은 모든 몽골 인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축제 때는 필수적인 것이다. 몽골 사람들은 콧소리를 섞어 가며 라마 경전을 낭송하는 소리, 고성으로 축복해 주는 외친, 동물의 울음소리를 모방한 소리 등도 모두 음악(노래)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새소리나 말발굽소리, 초원에서의 바람소리 등 자연계의 소리를 모방하는 깃이 곧 초자연적인 하늘나라로 향해 가는 상징적인 여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몽골 인들의 음악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새는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고 물은 지하세계와 상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리들을 노래로 모방함으로써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이러한 몽골인의 음악관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몽골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성악 적이다. 그래서 원나라 당시의 궁중음악을 제외하고는 가사 없이 노래의 선율만 연주하는 독립적인 기악곡 형식은 발달되지 못했다.
몽골의 음악은 일찍이 중국 한나라 때 흉노족의 고취악과 횡취악으로 중국에 유입되었으며 악기로서는 호가가 알려져 동 한말 기에 채문희가 쓴「호가 십팔박」이란 글도 있다.
몽골음악이 서방세계에 처음 알려진 것으로는 l246년 교황 이노센트 4세가 칭기즈칸을 배알하도록 파견했던 카르피니의 여행기에서 몽골의「전사들의 노래」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 있다.
1253년 루브루그의 몽골 기행문과 마르코 폴로가 구빌라이 칸(l275∼1291)을 16년간 모시면서 몽골궁중에서 연주되던 몽골 악기들의 특징에 대하여 기술한 내용에도 몽골의 음악이 나온다.
그리고 13세기 몽골어로 쓰여진『원조 비사』란 책에 여러 사람들이 북을 치는 모습과 샤먼의 노래효과에 대한 이야기와 방랑음악가들의 정치적 역할 및 칭기즈칸이 이들 방랑음악가들을 좋아했고 그들을 여러 곳에 파견했다는 내용이 전하고 있다.
그후 1735년부터 1745년 사이에 시베리아 문화를 조사한 그멜린이 몽골의 노래들을 최초로 오선보로 채보 했고 몽골노래와 가사를 모은 전집이 19세기에 출간됐다.
1910년 소련학자 오키로프에 의해 37곡의 칼믹 몽골인의 노래가 처음 녹음됐고 그 다음 해에는 브라디미르코프에 의해 24곡의 오리아트 몽골인의 노래가 녹음됐다. 이들 녹음자료는 소련 사회과학원 민속 아가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최근에는 1974년 잔 젠킨스의 채록녹음과 1984년 프랑스와의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서부 몽골지방의 음악이 녹음됐다.
필자는 이번 조사에서 오르도스 가무극단의 양옥난·소아납·덕니목격 등의 가수와 바투(파도)라는 이름의 마두금 연주자, 조하를 비롯한 4명의 무용수들이 칭기즈칸의 능이 있는 부근의 넓은 뜰에서 펼치는 연주를 녹음했고, 그 뒤 실내에서 저녁파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노래와 춤을 출 때 자료들을 수집했다.

<티베트음악 비슷>
칭기즈칸 능에서 라마승들의 연주에 맞추어 참(무당춤)을 연행하도록 해 녹음과 촬영을 하기도 했다. 외 몽골에서도 비슷한 라마승들의 가면무용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이들 무용에 쓰이는 악기들은 티베트의 사원에서 연주하는 악기들과 같은 것이었다.
2m가 넘게 긴 둥은 나팔처럼 생긴 트럼핏의 일종으로 쉽게 눈에 띄는 악기였다. 저음을 지속적으로 내는 악기다. 알프스 산의 알프혼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바라처럼 생긴 롤모는 심벌스의 일종이고 르갸글링은 우리나라의 태평소(쇄납)처럼 생긴 겹 혀를 가진 관악기의 일종이다. 드릴부는 두부장수의 종처럼 손잡이가 달린 종이고 통가는 좌고와 같이 양면 고인데 그것을 치는 채가 구부러져 있어 이색적이다.
이와 같이 몽골의 라마교 사원에서 연주되는 의식 음악은 티베트의 것과 대동소이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기대했던 샤먼의식 음악은 현지 사정상 조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랐다. 샤먼의식에서 음악은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샤먼은 음악을 통해서만 초자연적인 신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샤먼의 노래는 장식음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선율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음역도 그렇게 넓지는 않다. 샤먼이 신과 교통하려는 입신과정에서 부르는 주술적인 노래의 리듬은 점점 빨라졌고 높은 소리를 지르면서 새소리를 모방하는 노래는 샤먼을 황홀경에 이르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입신상태에서 샤먼이 신의 말을 읊는 것을 몽골말로 「탐라가」라고 한다. 이 탐라가를 부르면서 반드시 케츠라는 북을 쳤다. 케츠는 사슴 가죽으로 한쪽 면만을 씌워 만든 것으로 북의 테두리에 짤랑짤랑 하는 방울을 달아 놓았기 때문에 입신 과정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는 북소리와 방울소리 때문에 마술적인 기능과 효과를 잘 나타내게 된다.

<선율·음역도 단순>
몽골 음악은 성악위주로 긴 노래와 짧은 노래 등이 있고 서사적인 송가, 그리고 특수한 발성법인 후미, 그밖에 여러 가지 악기연주 등 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무엇보다 이들에게 정신적 안정을 가져다 준 것은 종교였다. 직업적인 샤먼은 문화적·정신적인 지도자였다. 이 종교 음악으로서의 샤먼의 노래는 낭송조의 단순한 가락이 반복되므로 노래의 정확한 음고와 음정을 알아듣기 힘들고 또 그것을 악보로 옮기기도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노래는 일정한 박자 없이 부르기 때문에 정확한 리듬을 표기하기에도 아주 어려웠다.
샤먼의 종교의식에 쓰이는 악기 중에 구금이란 것이 있었다. 보통 뼈나 나무 혹은 대나무나 쇠로 만들어진 것으로 샤먼의 종교의식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민속악에도 쓰이고 있었다.
이러한 구금(아망 호르)은 입에다 대고 줄을 퉁기는 단순한 악기지만 이색적인 음색을 내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악기다.
이 구금과 함께 특수한 창법은 후미를 중간 중간에 삽입함으로써 입신의 경지로 몰아가는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일정한 박자 없어>
내 몽골에 전승되는 전통가곡은 외 몽골에서와 마찬가지로 긴 노래와 짧은 노래로 나누어지며 강조가곡은 그 가사 내용에 있어서 종교적인 주제를 반영한 가곡, 옛날 군사들의 생활을 그린 노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노래, 미래의 복된 생활을 기원하는 내용의 노래, 친구나 부모의 온정을 그린 노래, 남녀간 사탕의 노래와 시집가는 색시에게 불러 주는 노래 등 다양한 내용의 노래들이다. 그 가사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노래하며 일정한 박자가 없이 부른다. 반주가 없이 부르는가 하면 마두금이나 요친의 반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내 몽골의 노래들은 우리나라 민요와 같이 무 반음 5음계로 불려지지만 언뜻 들어서 우리 노래와 비슷한 점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단조가곡은 일반화된 노래로서 군가냐 정치투쟁에 관련된 노래들이 많으며, 중국의 영향을 받은, 몽한조의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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