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불의 작가」하린두 화백 회고 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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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11월12일 암으로 타계한「혼 불의 작가」하린두 화백(1930∼1989)의 대규모 회고전이 29일부터 11월22일 까지 호암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에는 하 화백의 50년 대 작품부터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0여 년간의 대표작 1백여 점이 집약적으로 정리돼 전시된다.
초기의 구상작업에서부터 50년대 말 앵프르멜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시기의 작품, 이후 추상 색채작품을 거쳐 말년의 종교적 분위기의 작품까지 하 화백의 모든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이 전시회에는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40여 점 선보인다.
또 전시회에 발맞춰 대표작의 컬러 사진과 작가·작품론, 연보 등을 담은 대형 화 집도 출간된다.
하 화백은 박서보씨(홍익대 교수)와 함께 전후 국내의 추상미술 운동을 주도해 온 대표적 작가였다.
이들은 지난 57년 현대 미술가 협회(현대 미협)를 창립, 전쟁이 몰고 왔던 극한상황과 암울한 시대 상황을 어둡고 탁한 추상화면으로 표현했다.
박씨가 그룹 활동과 학교 등을 통해 활발한 현대미술 운동을 이끈 반면 하 화백은 타계할 때까지 줄곧 개별적으로 자기 길을 고수해 온 재야 작가였다.
70년대로 넘어서면서 그의 작품은 한결 밝아지고 화려한 색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67년 헌신적인 부인 유민자씨(49)를 만나 생활의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화면에 짙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교적인 관념의 세계였다. 그는 우주생성의 원리를 척다라에서 찾고자 했다.
화면중심에 원이 등장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구성이 리드미컬하게 확산·구축 되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단청이나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한국적 감각의 원색이 화면을 지배했다.
비로소 그의 작품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그는 색채와 빛의 조화를 추구했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케 하는 화면은 더욱 밝고 투명해졌다.
화면 구성도 서서히 해체되어 자유분방하고 율동적인 구성으로 바뀌었다. 바로 하 화백이 만년에 발표해 온『혼 불-빛의 회오리』연작들이 그것이다.
그를 아는 이들은 하 화백의 작품이 말년에 더욱 생동감을 보이는데 놀랐다. 불치의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작품은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 화백은 2년여 동안 두 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치열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이렇게 그려낸 작품 25점을 모아 지난해 4월 선 화랑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하 화백은 문장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내가 만난 시인들』『혼 불-그 빛의 회오리』등 저서도 남겼다.
그는 만년의 심경을 다음과 같은 글로 남기고 있다.
『요새는 그저 고마움만이 가득하여 나날을 축복의 은혜로써 생활하고 있다. 그 위에 신명스럽게 그림까지 그리게 해주었으니 과분하고 황공할 뿐이다. 하느님·부처님·조상 님·가족과 친지 이웃들, 모든 이에게 감사합니다』고 되뇌고 싶을 뿐이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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